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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큐레이터의 존속가능성과 비엔날레

장동광



71세를 일기로 별세한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은 20세기 개념미술과 전위미술을 선도하고 현대미술의 지형을 재편시킨 큐레이터계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5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29세 때에는 베른쿤스트할레 관장을 맡았으며, 1969년에는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tudes Become Form)’를 기획하여 물질을 넘어선 정신, 그 개념의 중요성을 미술의 평원 위에 기념비처럼 아로새겼다. 프리랜서 큐레이터를 선언한 이후, 40세 때에는 ‘카셀도큐멘타V’의 총감독을 맡아 ‘실재성의 질문-오늘날의 이미지 세계(Questioning of the Reality-Image Worlds Today)’란 기획으로 고급예술과 키치예술을 대비시키며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이 도큐멘타는 초과된 예산 350만 마르크를 자비로 충당해야 하는 불운을 선사했고 이로 인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1980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젊은 작가들을 위한 ‘아페르토(Aperto)’를 창설했고, 1999년과 2001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2회 연속 맡으면서 전시사에 역사적인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2002년 스위스엑스포에서는 황금나뭇잎으로 뒤덮인 전시관을 만들어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사망 이후 지난해에는 미국 LA 폴게티센터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가 그의 아카이브를 통째로 기증받기로 하고 제만의 스위스 마지아연구실(일명 : La Fabbrica(The Factory))에 있는 생전에 꼼꼼하게 모아둔 혼돈스런 자료들을 현대미술사의 연구아카이브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제만의 상속인들의 이 결정에 대해 스위스 언론들은 “스위스의 엄청난 손실”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내며 한탄했다.



큐레이터에 대한 지원은 필수우리나라에서 큐레이터로 존속할 수 있는 길은 제도권 미술관에서 비독립큐레이터로 일하거나 독립큐레이터로 국제비엔날레나 지방자치단체의 미술행사들을 기획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독립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현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으려면 사무실은 필수적이다. 제만의 경우처럼 스위스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국제적 활동을 펼치려면 작가와의 연락, 전시자료의 수집, 분류, 분석은 물론 카탈로그 편집디자인, 전시디스플레이 설계 등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모든 국제전이 전시공간과 실행예산이 지원된다는 전제조건에서 출발하더라도 큐레이터 자신의 항구적인 기획사무실의 운영, 협력자들의 인건비, 작업실 방문 등 사전조사비는 별도의 문제이다. 그래서 제만의 경우는 생전에 자신의 국제전 개런티를 책정할 때, 차기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예비자금을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를 그와 가까웠던 외국작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만식의 방식이 가능할 만큼 우리나라 큐레이터에 대한 지원과 예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2001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예술감독으로 지명되었을 때, 기획사무실, 협력자, 사전조사비 등을 용역프로젝트로 요구하여 수용된 바 있다. 그러나 3회 이후 전시예술감독의 개런티가 월급제로 전환되면서 제만식의 큐레이팅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광주비엔날레의 변천사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좋지 않은 사례의 전범들을 발견할 수 있다. 향후 제만과 같은 걸출한 큐레이터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시예술감독에 대한 국제적 예우는 물론 문화예술위원회에서도 큐레이터의 해외 연구활동 지원, 큐레이팅자료 아카이빙 및 저서출간 등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장동광(1960- ) 서울대 서양화 석사. 일민미술관 학예연구실 수석큐레이터,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현 한국큐레이터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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