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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차기 정부의 시각예술정책 과제

김찬동

새 정부 출범시마다 늘 혁신적 문화정책을 표방한다. 차기 정부 역시 혁신을 부르짖을 것이고 진영마다 이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장과 괴리된 채 구호만 요란한 공약(空約)으로 마감되기 일쑤이다. 실제로 지난 십여 년간 우리는 혁신의 미명하에 문화예술 현장이 형해화된 몇 차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문화민주주의라는 상반된 이념을 문화 정책의 과제로 다루고 있다. 전자는 경제적 성장을, 후자는 복지와 분배를 기조로 한다. K-Pop을 필두로 한 한류나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의 집중육성과 소외계층의 문화적 복지향상을 목표로 한 문화바우처 사업에 대해 정부의 예산과 조직의 비중이 높아지는 점들은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양자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기초예술의 비중은 현격하게 축소되어가며, 저급한 시장논리와 키치문화에 함몰되어가고 있다. 기실 문화산업이나 문화복지는 모두 양질의 기초예술 진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쉽게 그 원천이 고갈되거나 저급한 수준의 향유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산업과 문화복지를 추진함에 있어 기초예술의 가치를 튼실한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예술 전반의 구조조정과 조직, 인력, 예산 등 정책과제 전반에 대한 정치한 점검이 필요하다. 작지만 강한 전문조직과 장기적 목표에 근거한 실효성 있는 재정분배, 그리고 현장의 수요와 밀착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예술 진흥의 중심기관이라 할 수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중심으로 유사기구들을 통폐합하여 기관의 위상을 격상시킴은 물론, 분산된 에너지를 집중하며, 문예진흥기금과 전문인력을 획기적으로 확충함으로써 행정의 낭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과평가중심의 비문화적이며 소비적 요소보다는 실질적 진흥과 지원업무 중심으로 업무의 프로세스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예술의 진작을 위해서는 장르별 지원조직을 특화시키며, 새로운 융복합 환경을 선도할 수 있는 기능을 확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양질의 시각예술 원천 콘텐츠를 위한 필수적 요소

시각예술분야의 시급한 정책과제로는 대개 충실한 인프라 구축과 효과적인 개인창작 활동의 지원, 그리고 비평적 담론생산의 회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기본적인 인프라인 미술관제도의 기초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다. 화재로 인해 공기가 지연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을 더 늦추더라도 수준 높은 소장품의 확충과 학예연구 기능중심의 제도혁신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컬렉션은 문화산업으로서의 미술관운영의 원천 콘텐츠인 셈인데, 세계적 미술관을 만드는 일의 핵심이며 이를 연구하고 가치를 재생산해 내는 일은 전문연구인력의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국공립미술관의 수를 확대하되 미술관들의 기능과 특장을 면밀하게 분산하는 설계가 필요하고, 아울러 사립미술관과 대안공간 등 창작발표공간에 대한 운영재원의 확충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아울러 단기 계약직에 불과한 관장이나 큐레이터 등 전문인력의 고용증대와 안정적 고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시각예술의 국가적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양질의 시각예술 원천 콘텐츠를 생산, 재생산하는 기능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은 생애주기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신진작가에게 편중된 지원방식을 조정하고, 신진들에 대한 지원의 경우도 단순한 경제적 지원보다는 레지던스 확충이나 효율적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한 간접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가들의 지원 목표는 궁극적으로 국제적 수준의 작가로 성장시키는 것이라 할 때, 이들의 해외진출을 위한 전문인력인 큐레이터와 화상, 컨설던트 등을 육성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외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그간 전문인력이 상당수 배출되었지만, 좀 더 국제경쟁력을 갖춘 전문인력을 발굴, 조직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대표적인 중진 작가들을 재조명하여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미술만이 가지는 차별화된 담론생산을 위해 침체일로에 있는 비평활동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노력과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비평은 시각예술에 있어 문·사·철과 같은 인문학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으로, 전문인력들이 꾸준히 안정적으로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비평집이나 전문비평지의 발간과 다양한 비평활동을 통해 전문비평가를 육성하는 일과 그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재정지원을 늘리는 일이 필요하다. 비평은 작가 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의 내용과 가치를 생산 또는 재생산하여 창작활동의 부가가치를 증폭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의 정책과제의 주안점은 내용이 결여된 형식의 변화보다는 실질적으로 기초예술의 진작이라는 기본을 재점검하는 일일 것이다. 문화산업을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추진해온 영국이 근자에 내건 “모든 이에게 위대한 예술(Great Arts)을”이라는 기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김찬동(1957-) 홍익대 석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아르코미술관 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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