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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미술 작가는? 그리고 페미니즘의 미래는?

양은희

지난 6월 1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주최한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근현대미술과 젠더’ 심포지엄에서 필자는「텍스트와 실천사이에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미술 이론의 수용, 전개, 그리고 전망」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주최 측의 의뢰를 받은 주제이기는 했지만 필자는 생존한 인물들을 거론해야 할 때마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지난 25년간 전개된 현상을 진단하는 일이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 머물러 설득력을 잃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술계의 전문여성인력(미술사를 전공한 학자 및 교수, 큐레이터, 평론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논문에 반영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결과의 일부는 발표 논문에서 언급했지만 딱딱한 논문에서 다 못한 이야기가 있어 이 글을 쓴다.  


설문지는 6개 문항으로 구성되었고 주로 과거와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에 대한 생각, 페미니즘에 대한 본인의 의식, 향후 페미니즘 미술의 향방에 대한 질문들이었으며 이 용어가 가진 불편한 위상을 고려해서 실명과 익명으로 답할 수 있는 선택사항을 첨부했다. 지난 2월부터 설문지를 돌리기 시작하자 표본수를 늘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답변자가 모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 또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사회와 제도의 근간, 남성과 여성의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저항하면서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정치적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성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30대 6명, 40대 6명 등 총 12명의 여성으로부터 답변을 얻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12명의 답변을 분석하자 표본수 확보과정에서 확인한 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답변자들은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더 예민한 것 같았다. 실제로 비정규직이 많은 미술계의 특성상 정치적 문제는 개인적 문제로 연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이한 것은 40대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굳게 믿는 반면에 30대는 페미니스트 또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향후 미래에도 별로 중요한 이념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도 있다는 점이다. 적은 수의 답변이기는 하지만 ‘포스트페미니즘’이 미국의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미술계에 여초현상이 나타난 지 오래되었고, 대학원을 졸업한 석박사 학력의 여성들이 미술계와 관련 학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페미니즘의 소임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예술가를 꼽는다면?’이라는 질문에 답변자의 3분의 1이 윤석남 작가를 꼽았다. 그 이유는 “80년대 여성주의 미술운동의 맥락과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 경향을 두루 관통하면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꾸준히 보여준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2위는 김수자 “여성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성, 다양한 매체에의 이해와 도전, 문화와 역사의 이해에 있어서 다양성의 수용, 동질화나 보편화의 담론이 아닌 개별화, 특수성, 개인, 주변에 대한 세심한 관심 때문에”, 3위 이불, 4위 나혜석, 천경자, 염성순 순으로 답했다. 이불, 나혜석, 천경자처럼 유명작가를 꼽는 것은 자연스러웠지만 염성순처럼 인지도가 낮은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페미니즘이란 깃발과 상관없이 각개 전투하는 모습이 좋아서”라고 하는데 획일적인 시각을 거부하는 세대의 특징처럼 보였다. 



- 양은희(1965- ) 미국 뉴욕시립대 미술사 박사. 뉴욕 갤러리코리아 큐레이터,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프로젝트 매니저 역임. 현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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