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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미술대학교 강사가 사는 법 |김성호의 미술계 팩션(3)

김성호

학생 ‘고충군’
‘최고다’ 선생의 강의가 이번 학기에 없어졌단다. 이유인 즉슨, 그 동안의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로 ‘아웃’이 되었다는 것. 학생들 작품에 대한 철저한 파악, 창작 방법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비평적 논의, 나로서는 이처럼 ‘영양가 있는’ 수업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의 광팬이 되었는데, 할 말을 잃었다. 애들 말로는 ‘창작에 대한 지나친 간섭, 과도한 과제, 칭찬보다 더 많은 비판’을 일삼는 까닭에 그는 강사로서 부적격이란다. 게다가 절대평가임에도 C학점 주기를 밥 먹듯이 한다면서… 비록 엄하고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의 수업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반면에 격주 수업에 잦은 휴강을 일삼는 ‘도휴강’ 선생의 강의는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와 ‘A학점 잘 준다’는 소문 말고도 그가 미술현장의 유명인사라는 이유로 이번 학기에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도휴강’ 선생 꼴이 보기 싫어서라도 이참에 휴학을 하고 ‘최고다’ 선생 밑에서 당분간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배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게다가 소문을 들으니, 다음 학기부터는 1년 유예되었던 일명 ‘강사법’ 실행으로 혼란은 가중될 테고, 콜라보레이션란 이름으로 한 과목에 강사들을 쪼개어 배치하는 것도 그렇고, 실기과목에는 학생들을 잘 이해한다는 이유로 모교 출신이, 이론과목에는 학생들과의 눈높이를 맞출 줄 안다는 이유로 아예 실기전공 강사를 쓴다니까…

시간강사 ‘반성문’ 
살다보니 별일이다. 내가 지난 학기 미술이론 교과 부문 ‘강의평가 우수자’로 선정된 것이다. 상장과 포상금까지 받아오니 아내가 “당신 최고”라고 한껏 치켜세운다. 그런데 왜 이리 씁쓸한지… ‘양질의 수업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수강만족도를 높이고, 교강사의 사기진작을 고취시키며, 교수능력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전념케 함으로써 대학 경쟁력을 높인다’는 ‘강의평가’의 취지가 이해되면서도 못내 마뜩찮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려 강사를 죄는 족쇄가 아니던가? 강의평가로 상까지 받았으니 난 그 족쇄를 느슨하게 하는 방식을(비록 풀지는 못하지만) 아는 셈이다 : 어려운 부분은 강의안으로 대신하고 실제 강의는 무조건 쉽게 하라. 시원하게 웃겨 그들을 세상의 번뇌로부터 빈번히 탈주시켜라. (매번 인터넷 유머란을 뒤져 하나씩 준비해오는 것을 그들이 알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의 과오를 이해 못해도 언제나 용인하라. 절대평가일 경우는 A나 B학점을 주고, 상대평가일 경우는 최저 학점을 C학점으로 준 후 해당 학생들이 성적이의 제기를 하면 그들과 함께 그저 울어주라! 마지막으로 상대평가의 굴레에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고마운 학생들’에게 언제나 감사하라. 마지막으로 나만 아는 비밀 하나! 다른 우수강사들이야 훌륭했겠지만, 적어도 나는 학문적 양심을 내다 팔아버린 사실과 그것에 대한 자책감으로 늘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 

교수 ‘독고대기’ 
‘나후회’ 전(前) 교수가 창작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가 보다. 그가 직접 사표를 제출했으니 맞는 말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가 한 미술잡지에서 했던 인터뷰 : “박수 칠 때 떠나라고… 대학교수와 현장의 블루칩 작가로 늘 바쁜 시간을 보내던 나로서는 선택의 기로였다. 당시 정년을 5년 남겨둔 상태였으니까… 나는 순전히 학생들 눈치를 보는 대학교육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만 때문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작업하기에 시간도 모자라고... 매일 작업실로 출근하는 지금은 작가로 사는 맛이 난다.” 그가 누구처럼 스캔들이나 비리로 ‘도중하차’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임한 까닭은 사실 교육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창작에만 매달리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의 ‘밑바닥 강의평가 결과’가 최근에 자신의 교수업적 평가에 반영되면서 ‘부교수로부터 교수로의 승진’에 제동이 걸리고, 그가 신청했던 ‘연구 안식년’마저 계속 미뤄짐으로써 그간 추진해오던 일이 꼬이게 되자 홧김에 사표를 내던져 버렸다. 그가 신청했던 안식년 기간 동안 해외 메이저 갤러리에서 장기간 개인전을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때가 미술시장이 정점을 찍고 거품이 급속히 빠져가는 해가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시장에 내는 족족 팔려나가서 새 작품을 충당해야만 했던 호시절은 이제 끝이 나고, 최근 그는 손가락을 빨고 있다. 학생과 동료교수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그냥 학교에 남지 못했던 것을 그는 필시 후회하고 있으리라. 나처럼 학교에 남아 창작과 교육을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근데 내게 일이 벌어졌다. 오늘 학교로부터 내 이름을 거론하는 한 학부모의 투서가 접수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은퇴 후에 대학원에 강의 두 개를 받고 명예교수로 남아 있으려 했는데 혹시 ‘그 일’이 문제가 된 것일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병장 말년의 마음으로 초조해진다 

*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 김성호(1966- ) DEA파리1대학 미학예술학(미학 전공) 박사. 96미술세계 평론상(1997) 수상.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역임. 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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