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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문화재청장 변영섭 이후, 반구대 댐 철거와 문화재청 개혁이란 과제

최열

2013년 11월 15일은 대한민국 미술문화 기관장의 운명이 어떤 것인가를 그대로 보여준 날이다. 이날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전격경질(電擊更迭)을 당했다. 사전에 예고 없이 경질을 통보했고 청장은 오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실에 들어갔다가 5분 만에 나와서 퇴임식조차 없이 사표를 제출하고 청사를 떠났다. 지난 3월 취임한 뒤 8개월만의 일이다. 불명예퇴진을 당해야 할 만큼 변영섭 청장이 문화재행정에 어떠한 과오를 범했는지 나는 모른다. 오직 흘러나오는 언론 보도 내용으로만 미루어 보면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선정 논란이나 반구대암각화 보존방식에 대한 청와대와의 갈등, 국보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미국대여전시에 대한 정부 기관과의 갈등, 숭례문 복구부실 논란 및 석굴암 균열 논란, 게다가 최근 문화재청 산하 각종 자격증 대여 그리고 퇴임 관료의 자격시험 제도 특혜 및 관련 업체 취업과 업체선정 시 전관예우 논란 따위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어떤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이 취임한지 8개월 된 청장의 과오인 것일까. 먼저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한다는 가변형 투명물막이(Kinetic) 설치결정이 내려졌을 적에 나는 지난 10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 보존활동을 전개해 온 변영섭 청장이 맞는가 싶었다. 경악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댐을 철거함으로써 원상복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웬 투명물막이 설치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보존운동을 해 온 변영섭 청장의 의견이 아니었다. 댐을 그대로 둔 채 투명물막이를 설치하라는 건 청와대쪽이었다. 지난 10월 반구대 주변에서 1억년 전 공룡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사실 이 때 투명물막이 계획을 철회하고 댐을 철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문화재계는 잠잠했고 청와대는 오히려 투명물막이 길이를 40m에서 무려 80m로 늘이자고 제안했다. 변영섭 청장은 이것도 반대했다. 잘못은 누가 하는 것이었을까. 숭례문 및 석굴암 논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변영섭 청장이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청장이 외부 인사들로 하여금 논란을 부추기거나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있다고 했다. 호위무사 3인방 설까지 나와 복잡했지만 전문성을 생각할 때 외부 주장이 우선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치밀한 사실파악이 우선이고 따라서 하루 이틀새 어설픈 대응책으로 얼렁뚱땅 넘길 일이 아니라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심사숙고한 뒤에 대응책을 내는 게 맞다.


문제를 충분히 드러내도록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하는 것이 문화재 행정의 핵심인 만큼 대응책 발표가 우선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문제를 제기한 외부 인사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결정권한을 지닌 문화재위원회를 전문학자 중심의 민간인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 일부의 흠이 있지만 청장은 대체로 그렇게 했다. 고름을 터뜨려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청장에 대한 전격경질은 결국, 희생양 찍어내기인 셈이다. 그것도 지난 11일 대통령이 문화재 행정에 대한 질책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미술문화기관장의 서글픈 운명

전격경질을 지켜보면서 오늘날 우리 미술문화기관장의 서글픈 운명이 떠오른다. 국공립 미술관 관장은 거의가 공모를 통한 임기제로 뽑고 있다. 그런 제도는 결국 전문가를 국가권력 앞에 줄 세우는 굴욕의 도구일 뿐 아니라 그런 과정을 거쳐 선임된 관장은 해당미술관의 정체성과 장기전망을 자신의 철학과 구상 그리고 능력과 융합시키는 일 보다는 주어진 2년 또는 3년의 임기 동안 관장이 아니라 전시기획자로 돌변하거나 아니면 반짝 효과를 노리는 겉치레 행사나 벌이는데 급급할 뿐이다.


문화재청장 및 국립중앙박물관장이야 공모제나 임기제가 아니어서 그런 굴레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여겼는데 이번 전격경질사건으로 말미암아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실히 느끼고 있다. 바로 그 사람 나름인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건 변영섭 청장이 경질되자 마자 하루 만에 하마평에 오르는 청장후보가 ‘전문인’이 아니고 ‘행정관료’일 거라는 거다. 물론, 그러지 않을 것으로 믿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허탈하기만 하여 말해 뭐하겠는가 마는 그렇다고 해도 침묵은 오히려 더욱 부끄러운 일이므로 한 마디 해두려 한다. 첫째, 반구대를 감옥에 가두는 투명물막이와 댐 철거. 둘째, 이번에 제기된 숭례문과 석굴암 부실관리 책임자 처벌. 셋째, 전관예우 관행과 자격증 대여부정 철저 수사 넷째, 신임청장 선임 기준으로 학술과 행정, 경영능력을 겸비한 전문성 우선. 이것만을 지켜 달라.



최열(1956- )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문 대상(2010) 수상. 가나아트 편집장,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학예실장 역임. 현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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