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04)민화, 미술의 대중화 현상

정병모


2013년에 경주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의 민화잔치인 경주민화포럼


최근 민화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1월 인사동에서 10개의 민화전시회가 열렸다. 비수기인데다 미술계가 불황인 점을 감안하면,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민화축제인 대갈문화축제가 인사동의 새해를 밝혔다.『미술세계』에서는 ‘민화대첩’이란 전투적인 타이틀을 붙여가며 대대적으로 최근 민화계의 동향을 소개했고, 민화작가 200인의 전시회를 열었다. 작년 여름부터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MBC주말드라마 ‘마마’의 주인공은 캐나다에서 귀국한 세계적인 민화작가 스텔라 한이다. 민화의 유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 설정인 것이다. 대학과 백화점 등의 사회교육기관에 민화강좌가 늘어나고, 경주민화포럼, 영월포럼, 계명대 민화학술세미나 등 학술행사가 많아지며, 포털사이트에 ‘민화’라는 단어를 치면 하루에도 몇 건씩 민화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과연 미술계에 급부상하는 민화계의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미술의 대중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존 러스킨, 윌리엄 모리스 등 19세기 영국의 사회주의적 성향의 미술이론가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미술의 대중화 현상이, 유명한 이론가나 특출한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아줌마’들에 의해서 지금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고학력에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는 아줌마들은 육아와 교육에 빼앗긴 자아실현의 기회를 취미생활로 되찾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들의 취향과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좌지우지될 정도다. 지금 그들의 취미생활이 꽃꽂이, 다도, 서예 등에서 민화로 이동 중이다.

민화의 매력
도대체 민화의 어떤 매력이 그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 것인가? 밝고 명랑한 채색과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그들을 사로잡은 가장 큰 매력이다. 19세기 조선이 점점 역사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침울한 시기에 오히려 밝고 유쾌한 정서를 펼쳐 보인 것이 민화다. 여기에 행복을 염원하는 의미까지 깃들어져 있으니, 완전체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민화의 또 다른 매력은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현대적인 예술이라는 점에 있다. 수묵화나 채색화와 달리, 민화는 한국적인 정서가 짙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빵이 아니라 밥처럼 늘 보아도 질리지 않고 친근한 그림이다. 또한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한 세계가 현대미술에서 느끼는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한다. 현대인이 민화를 그리기 좋아하는 이유를 더 찾는다면, 빠른 성취감이다. 민화는 본(本)그림이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두 달 정도 배우면, 모란그림 한 점 정도는 자신의 집에 걸어놓을 수 있다. 한 일(一)자만 일 년 내내 그려야 하는 서예와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요즈음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고 있는『비밀의 정원』처럼, 민화그리기에 몰두하면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
여기서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본그림, 즉 모사를 위주로 하는 이들을 과연 작가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프로와 아마추어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취미로 모사작업을 하는 것은 아마추어의 세계다. 그들 중 뛰어난 이들은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 것이다. 우리는 프로들만 냉정하게 바라보아야지, 취미로 즐기는 이들까지 프로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서양문화에 무작정 열광했던 우리들은 서서히 우리의 문화로 관심을 되돌리고 있다. 팝송에 심취했던 이들이 서태지 이후 우리 가요를 즐기고,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에 빠졌던 이들이 ‘쉬리’ 이후에 국산영화를 찾는다. 고흐나 세잔의 작품을 보기 위해 길게 선 줄도 어떤 계기가 되면 우리 미술을 보기위해 옮겨갈 것이다. 아미 그 계기는 민화가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민화는 가장 한국적이고 현대적이고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민화가 우리 전통미술이면서 현대에도 유용성이 매우 높고, 이미 세계 미술애호가의 관심과 찬사를 이끌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중들이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우키요에를 모사하는 일을 취미로 삼지 않고, 중국의 일반 사람들이 민간연화를 찍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이들이 우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인 민화를 그리며 새로운 삶의 보람과 기쁨을 찾고 있다. 이러한 민화의 저변화 현상은 미술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자 잠재력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민화계의 움직임에 대해 팔짱을 낀 채 레이저 광선같은 눈빛만 쏘아붙여서는 안될 것이다.


- 정병모(1959- ) 동국대 미술사학과 박사, 한국민화학회 회장, 한국민화센터 이사장. ‘한국의 채색화’, ‘반갑다 우리 민화’, 부산박물관의 ‘행복이 가득한 그림, 민화’, ‘중국민화전’ 기획『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한국의 풍속화』외 다수 저술.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