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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서구미술이 한국미술을 몰래 베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강철

필자는 1999년, 작가 이동기와 성곡미술관 전시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동기는 5번의 개인전을 열정적으로 막 마친 젊은 작가였지만, 아직 유명 작가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가냘프게 고백하는 당시의 울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는데, 결국 그와의 인터뷰를 활자화해 성곡미술관 전시장에서 관객과 공유하였다. 내용인즉 일본의 한 작가가 자신의 아토마우스 콘셉트를 모방해서 승승장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명확한 정황과 증거가 있었다. 그 일본작가는 무라카미 다카시로 그의 캐릭터 미스터 도브(1994년)는 아토마우스(1992년)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슷한 외형도 그렇지만, 무라카미 다카시는 그 이전까지 한 번도 그러한 작업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익대 회화과 대학원에서 이동기는 동경예대에서 유학 온 일본 작가와 친분이 생겼는데,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꾸준히 그에게 자료와 도록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일본의 그의 작업실에 자주 놀러 오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작업을 시작하여 현재는 J팝아트의 선봉장이 되었다. ‘국가 브랜드 영향력의 법칙’으로 무라카미 다카시는 단번에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제자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훔쳐 화려한 칭찬을 받는 선생의 ‘힘의 논리’처럼, 당시 힘없는 제3세계의 젊은 예술가는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팝아트의 상징이 되어서 이러한 회고도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정작 당사자 이동기는 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런 생각이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이러한 갑의 표절을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최진아(Choi Jin-ah), Reading, 2005

Jonathan Safran Foer, Tree of Codes, 2010
(출판사 Visual-Editions/www.visual-editions.com
/our-books/tree-of-codes)


권오상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오상은 대학생이었던 1998년부터 사진조각을 시작하였고, 해외에도 그의 고유성이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한 즈음, 2004년 올리버 헤링이라는 작가가 느닷없이 권오상과 유사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비디오 작업과 철사로 뜨개질 조각을 하다가 한동안 공백기를 거쳐 갑자기 권오상과 유사한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를 본 한국 유학생의 제보가 이어졌고, 이메일로 항의해도 답변을 거절하였다. 2006년 뉴욕의 해당 갤러리에 방문하여 정식으로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자, 법적 대응을 준비한다. 당시 미국에서 변호사를 통해 레터를 보내고, 선임까지 알아보지만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지만, 항의하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이것이 중요하다. 권오상은 직간접적으로 항의와 질문을 계속 하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었고 변호사의 메일까지 받았으니 압박을 꽤 받았다고 본다.) 결국 2010년 사진조각과 멀어진 작업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그 맥은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올리버 헤링은 대여섯 점 정도의 사진조각 인물을 만들었고, 여전히 권오상의 작업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이동기나 권오상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활동하기에 무난한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작가들은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고 속병만 앓는 경우도 지금도 많다. 인사미술공간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최진아 작가도 몇 년 전 런던 체류 시 미술관계자에게 포트폴리오 CD를 몇 개 배포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똑같은 작업이 런던에서 행해지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국의 출판사가 진행한 프로젝트인데, 이메일로 항의해도 영국 출판사의 답변 역시 ‘전혀 몰랐다’이다. 그 작가 역시 이전에 이러한 작업을 한 적이 없다. 어디 표절 사례가 최진아 작가뿐이겠는가.

한국의 국력과 고립된 구조로 인한 불리한 경쟁의 연속
2010년『뉴스위크』는 이데올로기 시대가 지나고 재편되는 세계 질서를 분석하는 특집에서, 유독 이웃 나라들과 묶여 블록화 되지 않는 고립된 나라를 소개한다. 브라질, 프랑스, 인도, 일본, 한국인데, 규모나 언어로 봐도 한국이 가장 고립된 영역이다. 싸이월드를 벌써 만들어놓고도 페이스북이 오리지널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서구 콤플렉스가 지속되는 한, 이 땅의 수많은 크리에이티브는 대부분 짝퉁으로 도외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여기 있다. 아이디어를 만들어 놓고 뺏기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이 땅에서 누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려고 할까. 이제는 맨파워가 아닌 시스템으로 예술가의 창의력을 보호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 강철(1972- ) <서울포토> 디렉터,『사진연감』,『KREATIVE』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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