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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컨닝사회와 한국의 현대미술

김백균

미술이 비록 근대 서구에서 형성된 제도이고, 근대적 주체의 개입과 세계에 대한 음미가 미적 쾌감에 작동하는 원리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주위에 이렇게 많은 서구권 유학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한국에서 제대로 된 현대미술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항상 의문이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이 의문이 미각을 주제로 한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소설『미식예찬』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서양요리라고 하면 경양식 정도가 연상되던 시절에 일본에서 정통 프랑스 요리가 뿌리내리게 된 과정을 추적한 글인데, 왜 그렇게 시간과 경비를 들여 대다수 사람이 먹어 볼 기회조차 없는 맛에 대한 추구를 끝까지 해야하는지 쓰지 시즈오라는 한 요리학교 교장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역으로 말하면 그의 노력 이전에는 일본에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가 없었다는 것인데, 그 이전에도 프랑스 요리를 만들고 먹었으며, 그중 일부는 프랑스 유학을 통해 프랑스 요리를 일본에 이식했을 터였다.

문제는 ‘훔쳐보기’이다. 문제의식이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을 때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궁극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형식은 비슷할지라도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위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미술가들은 대개 조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또는 감정을 배제하고 지적 세계를 묘사한다는 두 가지 작업태도 중 하나를 견지하고 있다. 미술이 감정을 다루는 것이라고 해서 감정의 시각적 분출이 미술일 리도 없을 뿐 아니라, 작가가 느꼈을 그 감정을 굳이 관객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또 감정을 배제하고 지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라면 굳이 미술이 아니어도 된다. 철학이 있다. 물론 예술이 지적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라는 작가들의 경우 예술로 철학한다 주장하지만, 예술로 철학을 한다면 결국 철학을 하는 것이다. 흔히 예술이란 주관적이어서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현상을 보고 개인마다 달리 느끼는 것이라면 꼭 그 작품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술이 주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관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작품이 전달하는 내용이 감상자의 감각과 교양에 따라 음미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지, 작품의 전달내용이 이도 저도 아니거나, 혹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 형식을 갖추려는 노력은 작품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제한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갖춘 형식의 정확성에 따라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좁혀지게 되고 의미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가능성이 사라진다. 『시경』의 <모시서(毛詩序)>에 이르길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고, 말로 나오면 시이다. 감정이 움직여 말이 되는데, 말로 만족하지 못하면 탄식하게 되고, 탄식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노래하게 되고, 노래로 만족하지 못하면 춤을 추게 된다”고 말한다. 말로 다 전달되지 못하는 미진한 부분 때문에 노래하고 춤춘다. 이때 노래와 춤은 감정의 개입이라는 방식으로 말의 의미를 제한하게 됨으로써 내용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한다. 감정은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형식은 이미지를 쓴다는 점에서 의미의 확장을, 감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의미의 제약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미지로 축약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읽으려면 의미를 확장해야 하고, 그 의미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정을 사용한다. 감정은 감각에 의해 포착되므로, 감정을 작품에 묘사하거나 혹은 작품에 묘사된 감정을 읽기 위해서는 감각을 기르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감각에 의해 포착된 작품에 드러난 감정에 감상자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 내용이 감상자의 인식을 확장시킬 때 일어나는 쾌감을 예술의 가치라고 한다면, 작품에 새로운 감각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내재해야 특정 작품의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에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답이 존재하고, 개연성에 의해 그 문제의식과 답이 나의 문제가 되며, 내가 그 작품의 생각과 느낌에 무한 동의를 할 수 있을 때 작가의 말에 설득당하는 감동이라는 것이 생긴다. 얼마 전 서울대 학생들의 중간고사 컨닝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자신의 문제는 컨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컨닝하는 이유는 답이 외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대미술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훔쳐보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 김백균(1968- ) 서울대 동양화과 학사, 중국 베이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박사. 현 중앙대 한국화학과 교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특별연구원(2001-2002) 등 역임.『어린이 책에서 시와 그림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하여』(2003)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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