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0)작은 것이 아름답다

윤동희

이야기 하나 

얼마 전, 그래픽 디자인 계간지 『그래픽(Graphic)』은 국내 그래픽 현장의 ‘소규모 스튜디오’ 22곳을 소개했다. 대부분 서너 명 이내의 구성원이 오밀조밀 모인, 또는 디자이너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세포 단위의 스튜디오였다. 디자이너 개인의 비전을 소규모 스튜디오라는 조직을 통해 실현하는 과정을 눈여겨보는 것. 거대조직이 안겨주는 안온함에 도취해, 자신도 모르게 밋밋한 일상의 덫에 빠지고 마는 아티스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때에 “네 멋대로 해라”를 당당히 외치는 디자이너 소집단의 이야기는 분명 새겨 들을만했다. 


이야기 둘 

지난 해 국내 대중음악, 그 중에서도 인디(Indie) 음악시장은 1년 내내 따뜻한 봄날이었다. 언니네 이발관, 요조, 소규모 아카시아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타루, 한희정 등의 뮤지션들이 5천~2만장이라는, 인디 음악치곤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어를 거두었다. 그 중에는 번듯한 앨범을 들고 나온 이도 있었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조그만 작업실에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손수 CD를 굽고, 속지를 삽입하고, 스티커를 붙여 내놓은 밴드도 적지 않았다. 한때 음악을 고사시키는 원흉으로 꼽힌 온라인 음원시장도 이들‘소규모’뮤지션들에겐 적절한 소통의 도구이자 공간이었다. 물론 홍대앞 소극장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아날로그적 감성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 결과 국내 대중음악은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등 탁월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그룹들과 김동률, 유희열 등 자신만의 음악으로 장수하는 뮤지션, 그리고 언제든지 주류 음악계에 치고 나갈 수 있는 인디 음악이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 셋 

미술계는 달랐다. 지난 1~2년간 미술계는 온통 ‘미술시장’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밖에는 다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특별한 검증절차도 없이 여기저기서 미술시장 전문가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그런데 갑자기 경제 위기라는 벽이 나타났다.(사실 ‘갑자기’라는 말은 옳지 않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가 고속성장경제의 풍요의 환상 속에 감추어진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부유한 노예』라는 책을 쓴 건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한창 몸집을 불리던 상업화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빠르게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어디 이뿐인가. 새로운 권력 앞에 미술계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불명예스럽게 나가 떨어지는 데도 누구 하나 가로막는 이가 없다. 찬성의 목소리와 반대의 목소리가 생산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곳. 새로운 방법론도, 묵직한 담론도, 신선한 이미지도 없는 곳. 문화현상에 관한 의미있는 시선과 현실에 대해 용기있는 발언은 꿈도 꾸기 어려운 곳. 미술시장은 커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소규모 

얼마 전 2009년 한국미술의 트렌드를 물어온 어느 패션잡지의 질문에 이렇게 적어넣었던게 생각난다. 작업과 큐레이팅, 비평 등 모든 분야에서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 ‘작고 단단한’ 과정과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소소한 바람을 ‘소규모’라는 단어 속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닐것이다.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창의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예술 모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천편일률적이고 상품화 된 주류 미술계를 고민하는 창의적인 소규모 독립 예술가들, 시대를 앞서가는, 동시에 대중의 감각과 취향을 자극하는 그런 누군가 혹은 집단. 지금 미술계가 원하는건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국내 대중음악은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등 탁월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그룹들과 김동률, 유희열 등 자신만의 음악으로 장수하는 뮤지션, 그리고 언제든지 주류 음악계에 치고 나갈 수 있는 인디 음악이라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규모’의 정신을 잃지 않는 인디 음악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위기에 처한 미술계 역시 작업과 큐레이팅, 비평 등 모든 분야에서 ‘작고 단단한’ 과정과 결과물에 눈길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윤동희(1972- ) 연세대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월간미술 기자, 아트인컬쳐 객원 편집위원 역임. 현 북노마드 대표.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