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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안평대군 탄생 600주년 기념전시를 기대하며

강종권

안견(安堅), 몽유도원도, 1447, 비단에 먹과 채색, 38.7×106.5cm,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서 도원을 보았지만 작가들은 당대 미술관에서 그의 꿈을 그려나간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산수화인 몽유도원도를 차용하고 재해석해 많은 작가가 작품으로 그려왔으나 제각각 현실과 꿈 간의 몽롱한 경계를 반복해 답습하였다. 자하미술관은 4년째 동일한 주제로 그가 꿈을 꾼 날(음력 4월 20일)을 기념해 전시 해왔었는데, 이번 전(몽중애삼-삼색도전6.5-7.12)에는 학자와 작가들로 구성하여 예술과 정치의 관계와 그의 역할을 상상하면서 발자취를 더듬는 연구를 통해 작품을 창작해 발표했다.

안평대군이 29세 되던 1447년(세종 29)에 안견의 솜씨를 빌려 몽유의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다음 3년 뒤에는 〈몽유도원도>를 여러 문신에게 열람하게 하였고 각자 시와 문으로 장식하게 했다. 수성궁에서 살면서 33세 되던 1451년에는 자하미술관이 있는 부암동의 청계동천에서 꿈과 일치하는 곳을 찾아 무계정사를 지은 후 문신들에게 시로 그 일을 기념하게 했다. 그러다 향년 35세 예술가이자 정치가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고 배신의 현실을 곱씹으며 슬픔 속에 죽어갔다. 서양의 초기르네상스와 동시대인 조선전기, 안견은 구술을 기초로 청(請)을 받은 지 3일만에 거작을 그려냈지만, 전시초대작가들은 문화융성시대를 꿈꾸며 붓으로 600년 전의 안평대군과 하나된 마음으로 오랫동안 작품을 완성하였다. 몽유도원도의 발문처럼 그의 꿈과 비교해가며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안견과는 달리 자유롭게 그려나간 것이다.

우선 심포지엄을 통해서 정연(안평대군의 장인)의 후손인 정영목 선생의 고려왕조부터 가문에 얽힌 비화를 경청하고, 양부인 성녕대군 파종회의 ‘이왕가 가계도’, 『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저자 김경임 선생의 ‘안평과 그의 삶’,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의 ‘개창기 조선문화의 전형미 세계성과 안평체미학’, 『안평평전』을 집필하고 있는 심경호 선생의 ‘안평대군의 몇 가지 보고’와 송희경 미술사가의 ‘안평대군과 조선전기 회화’를 듣고 두 차례 토의를 거쳤다.

한 시대의 문화예술을 주도했던 안평대군! 정치가 예술과 분리되지 않은 조선 초 시절, 당시 예술은 곧 정치였다. 상층계급의 각종 문예(文藝)모임에서 한시를 잘 지었던 그는 최고의 지성인 집현전 학사들의 인망을 얻었다. 그러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든 권력에 의해 다른 사람의 삶을 규정짓고 헝클어버린 이중적 존재가 된 것이 안평대군의 비극이 지닌 진정한 의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종헌 건축사학자는 옛 문헌을 토대로 무계정사 각자 바위를 중심으로 터를 비정해 보았으며 문화해설사와 함께 <한양도성도>를 참조해 옛길을 현 지도에 표시해가며 수성궁에서 무계정사간의 길을 실제 몇 차례 걸었다. 작가들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준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역사 속 그의 온전한 마음을 찾기 위해 삶의 주 무대인 곳에서 사약을 받은 곳까지 추적해 가며 증거 하고 싶었고 그의 체온까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수성동 계곡, 부암동, 마포동은 물론 정난 후 100명의 무사에게 압송되어 간 잠두봉 선착장을 들렸다가 한기출 교동문화보존위원장의 안내로 1주일간 머문 강화도 감영터와 하루 만에 사약을 마신 스산한 교동 형장터까지 영웅의 마지막 길을 몸으로 느꼈다.

그가 희생당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에는 문화대통령이라 칭송받을 것이 틀림없다. 한 시대 영웅의 불꽃은 정치의 장에서 비극적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까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안평대군은 한 개인으로 천재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조선 문화 황금기 예원의 패트런(후견인)으로 중심에 서 있었다. 지상에서의 삶은 짧았으며 그의 예술적 감각과 학문적 소양은 전하는 시문이 흩어져 알 수 없다. <몽유도원도>는 남아 있지만, 그림을 다시 펼쳐 보았을때 그것만으로는 그의 진정한 마음조차 헤아리기 어렵다. 겨우 안휘준 박사의 논문을 통해 알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일대기에 대해 학자들이 입을 연 것은 유의한 일이다. 오는 2018년에는 탄생 600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그동안 왕조가 억제하고 개인의 자기검열로 제대로 기록이 안돼서 용선 작가의 고견처럼 마냥 상상력을 끌어내기 쉬운 비극적 인물이 안평대군이었다. 앞으로 어떤 형태든 그의 일생을 재구성하고 그 예술혼을 조명하는 담론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강종권(1955- ) 고려대 및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LG생활건강 근무,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이사,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겸임교수 등 역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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