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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우리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다

이선영

오인환, 사각지대 찾아가기, 2015


하태범, 얼굴, 2015


2012년 개편안을 거쳐, 4회를 맞는 ‘올해의 작가상 2015전’(8.4-11.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후보 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의 작품들은 세계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착종된 도가니 속 열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작품은 대부분 현실에서 온 것이며, 그것들이 다 사실이라면 아직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그들의 예술은 현실에 가속도를 붙인다. 과도한 자극으로 무감각해진 이들에게 현실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문제가 문제로 드러난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관객들에게 작품 감상이라는 심미적 행위가 아니라, 각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뭔가 설교하는 식의 진부한 계몽주의적 어법은 지양된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우리에게 당면한 현재 진행형의 문제들이다. 작가들은 번쩍거리는 현대의 스펙터클부터 고대의 유적지 같은 여러 방식을 동원하였지만, 공통적으로 동일자(같음)와 타자(다름)에 관련된 모순과 갈등을 표현한다. 갈등이 감지되고 전달되며 증폭되는 미디어는 작업의 핵심에 놓인다. 김기라는 아예 전시장을 어두운 영화관처럼 꾸며놓고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갈등의 국면들을 분석적으로 나열했고, 신화시대의 고고학적 유적을 호출한 나현의 작품에도 민족 간의 다름(또는 다름 가운데 같음)을 표현하는 매체로 등장한다. 

세계의 경악할만한 사건사고가 등장하는 하태범의 작품에서 미디어로 송신되는 메시지의 말단에는 시청자(또는 관객)들이 있다. 작품을 통해 사각지대를 탐색한 오인환은 홀로 있는 공간 역시 미디어에 포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를 억압하는 지배적인 코드와 그 코드를 강화하는 미디어의 어법을 역으로 활용한다. 김기라의 작품에서 무한 경쟁과 전쟁을 낳는 시장의 논리 아래 모든 것이 재편되면서 개인은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하태범의 작품에서 한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이 드러난다. 오인환의 작품에서는 규율 사회에 의해 작동되는 촘촘한 감시망에 의해 개인의 삶은 극도로 위축되고 있음이 폭로되고, 나현의 작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문명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갈갈이 찢긴 바벨탑의 저주는 현실화된다. 작가들은 차이가 생산적인 다름이 아니라, 억압과 갈등을 낳는다는 점을 주목한다. 젊은 작가들이어서 그런지 어두운 면에 더 많이 주목했다. 어느 때보다도 다름이 즉각 파악될 수 있을 만큼 조밀해진 세계 속에서, 차이는 창조만큼이나 파괴를 야기한다.

오늘날 예술은 이질성이 발생하고 자라며 보호받기도 하는 몇 안되는 영역으로, 모든 것을 하나(시장, 자본)로 수렴하려는 지배 사회의 압력에 저항하는 보루가 되고 있다. 이는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정치적 예술을 외치는 문제와도 다르다. 이번 전시의 네 작가 모두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은 좌우로 나뉜 진영의 논리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웠던 개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주요 레지던시나 대안공간 등에서 활발히 작업하고 전시해왔던 이들로, 필자가 아는 한 그들은 누가 알아주든 말든 꾸준히 작업해왔고 그래서 그들이 발언하는 사회적 메시지 또한 진정성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오픈 날 북적이는 인파들 속에서 전시를 봐서 더 그랬겠지만, 한 작가마다 한 개씩 배정된 네 개의 방은 각 작가의 개인기를 총체적으로 가늠해 보기보다는 어떤 주제로 작가들을 모아놓은 기획전 같은 면모도 발견된다. 과천관에 비해 서울관에서의 전시는 다소 좁아 보였지만, 작가들의 사회적 메시지를 증폭시키는데 서울 한복판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이선영(1965- ) 이화여대 생물학과 학사,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수료).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1994), 웹진『미술과 담론』편집위원(1996-2006),『미술평단』편집장(2003-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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