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15)단색화와 황현욱 - 황현욱을 회고하며

피정환

황현욱, 도날드 저드, 야마구치 (일본화상)


지난여름 베니스비엔날레를 갔다가 우연히 단색화 특별전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국내 화단의 화두로 떠오른 단색화가 자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과 호응을 일으키는 것을 몸소 체감하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등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로컬 갤러리나 경매 회사의 주요 거래 작품으로 등장했다는 것, 나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10배 이상의 작품값의 상승은 단색화의 인기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유례없는 단색화 열풍은 그동안 국내 미술시장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작업 정신으로 인내하며 버텨준 작가들이 이루어 낸 결실일 것이다. 또한, 단색화 부흥과 정착에 지속적으로 헌신해 온 국내 미술 기관과 미술계 관계자들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여겨진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단색화와 관련지어 떠오르는 인상 깊은 분이 있다. 그분은 작가이자 전시기획자인 황현욱(1947-2001) 사장이다. 작가로서 황현욱은 70년대 중반 대구에서 이강소, 최병소 등과 함께 현장실험미술을 선보였다. 이는 대구 지역에서 시작한 현장실험미술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이후 전시 기획자로서 황현욱은 지역 최초로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과 함께 교류하며 담론을 통한 전시를 기획하여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지역 화랑들이 단색화, 모노파[物派] 작품 등에 관심을 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당시 대구지역은 구상미술이 강세인 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현대미술 양식으로 관심이 확장되는 중이었는데, 황현욱 사장은 그 중심에서 대구의 현대미술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황현욱의 미감과 남다른 전시기획을 눈여겨본 윤형근 작가는 서울 진출을 권유했고, 80년대 말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인공갤러리를 열게 된다. 


좌측부터 이경성, 박서보, 황현욱(우측 끝) 외 1인


당시 동숭동은 낭만과 옛 정취가 가장 잘 혼재된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한다. 황사장은 그곳에 사재를 털어 한국 최초의 미니멀 전문 화랑을 직접 건축하여 운영했다. 인공갤러리는 탁 트인 단순한 공간에 2층 높이의 층고와 미니멀한 단색화 작품이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하얀 셔츠와 검정 정장을 즐겨 입던 황사장은 미니멀한 공간 속 단색화 작품과 함께 잘 어우러지며 갤러리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다. 서울에서도 인공갤러리는 주로 국내 작가의 단색화와 미니멀 위주의 전시를 열었고(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박현기, 김용익, 문범, 김창렬, 이기봉 등) 해외 작가로는 도날드 저드나 칼 안드레 등의 미니멀 작품이나 리차드 롱의 설치 작품을 전시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미니멀 작품이나 단색화가 국내 미술 시장에서 인지도나 호응도가 낮아 쉽게 열리지 않았던 전시들이었기에 황사장의 이러한 시도들은 남다른 행보로 기억된다. 덧붙여 황사장은 지속적으로 단색화와 미니멀 작품들 전시를 개최하며 꾸준한 관심을 이어갔는데, 이는 척박한 한국 미술시장에서 미술에 대한 그만의 철학과 자긍심 없이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단색화가 국내외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현시점에서, “생전에 본인이 취급하는 그림은 최소 20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라 얘기했던 황사장의 말이 어느덧 진실이 되었다. 오늘날의 단색화 열풍 이면에는 황사장과 같은 숨은 조연들의 활약이 뒷받침해온 결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故 황현욱 사장의 단색화에 대한 열정과 소신을 돌이켜보면서 유능한 화상 밑에 훌륭한 작가가 나온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 피정환(1956- ) 단국대 경제학과 졸. 신흥상가(주) 전무이사 역임. 현 신동시장 대표.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