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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한국 미디어아트의 오늘, 그리고 내일

신보슬

강남역에서 교보타워 사거리까지 강남대로의 약 760m 구간에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아트 미디어폴’이라는 것이 생겼다. 높이 12.4m, 폭 1.4m, 35m 간격으로 22개의 미디어폴이 번쩍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설치된 인터넷아트 미디어폴은 예술과 첨단기능이 결합한 상호감응형 가로시설물로 국내외 유명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도로쪽에서는 LED패널을 통해서 미디어아트 작품을 볼 수 있고, 인터넷 검색은 물론, 포토메일 전송과 UCC 촬영도 가능하단다. 세계 최초라고 하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LED 패널에 꽃이 그려지고 나비가 날아다니면 다 ‘미디어아트’라고 도대체 누가 그랬단 말인가.


해외 미디어 아트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첨단 IT 강국인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얼마나 신기하고 새로운 미디어아트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대에 부풀어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한국에서 만나는 것은 첨단 IT 제품들이지 미디어아트는 아니다. 컴퓨터 네트워크게임은 세계 최고지만, 게임아트는 없고, 실용화된 모바일 테크놀로지 역시 세계 최고지만, 모바일아트는 없다. 그저 화려한 빛을 자랑하는 도시경관 미디어들 속에 박제화된 동영상 이미지들은 있을지언정, 이런 기술들을 ‘똑똑하게’ 사용하는 미디어아트 작품은 없다. 이것이 한국 미디어아트의 오늘이다.


현실은 이런데, 각 지자체들은 미디어아트를 어떻게 하지못해 안달이났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트센터를 만든다는 계획도 들리고, 국제 미디어/디지털아트 페스티벌도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일까. 2008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서는 전례없이 많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객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반갑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나 기획자들이 아니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페스티벌이 있기 전에 퓨처랩이라는 미디어랩이있었고,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 미술시장에서의 판매가 뚝 끊긴데 비하여, 여기 저기서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시설물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높아진 미디어아트를 둘러싼 이러한 관심은 얼핏 미디어아트의 전성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적이거나 재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이 그저 만들어진 작품들을 가져다 틀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작가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빌딩의 외관을 덮는 전광판도, 최고급 장비, 거창한 미디어센터도 아니다. 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장(場), 허름한 창고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고, 단시간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작더라도 지속적인 지원이 더욱 시급하다. 만들어진 작품을 전시하는것 못지않게, 좋은 작품이나 올 수 있도록 다양한 워크숍이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아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는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아이들을 즐겁해주는 첨단 장난감을 만드는 것만도 아니다. 물론 지자체 공무원들이나 빌딩 소유주들을 만족시키는 화려한 쇼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미디어아트는 적어도 테크놀로지가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예술이다. 때문에 그 어느 장르보다 정치, 사회, 철학에 민감해야 하고, 어느 장르보다 개방적이어야 한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이해가 바뀔 때, 전시행정에 급급한 사람들을 위한 장식품을 만드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했던 레브마노비치(캘리포니아대 시각예술학과 교수, 미디어 이론가)는 한국은 테크놀로지가 너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아트나 매체에 대한 인문학적 반성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작가와 기획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인 작업실을 개방하여, 워크숍을 만들고, 하우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큰 틀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에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소중하기만 하다. 이들이 좀 더 힘내서 움직인다면 천박한 LED 조명판에 휘둘리던 속빈 강정이 조금은 알차지지 않을까.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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