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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학로 100번지 아르코미술관

정용도

기억은 경험을 디자인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미학적이라는 것은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상황에 의미론적인 지평을 부여하는 행위이자 하나의 보편적 가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로 100번지’ 전시(5.21-7.5)는 미학적인가 예술적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런 것을 떠나 이 전시는 회상의 차원에 머물러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정치적 상황에(문화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대해 이 전시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13일 문화체육부장관 지침에 의해 문예진흥위원회 본관 건물과 아르코미술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켜 가칭 ‘대학로 종합예술센터’로 만든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보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미술관과 건물을 무대연습실을 겸한 창작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부가 제안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보면 예술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인식과 예술적 실천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르코 미술관이 해왔던 역할을 공연예술의 몫으로 빼돌린다는 혐의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지침인 것이다. 사실 복합문화공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축적된 많은 연구 없이 문화적 타자의 상황에 대한 개입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적인 과정은 왜 개진되고 반복될 수 없는 것인가. 예술센터로서의 아르코미술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상황과 관련하여 많은 부침이 있는 이 시점에서 ‘대학로 100번지’ 전시가 왜 필요했는가? 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냥 했던 전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동안 아르코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우선 ‘대학로 100번지’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면에서의 확장적 측면이 간과되어 왔다는 것이다. 아르코미술관의 정신지리학적 특성상 전시행사를 통한 대중과의 교류보다는 문화의 시각적 특성에 대한 전술적인 고려가 좀 더 중요한 쟁점이 됐어야만 했다. 두번째는 불특정 다수의 작가들에게 예술기금을 제공해주는 기관으로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이 전시로 인해 위축되어 왔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와 기금의 분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납세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소위 문화를 산업으로만 생각하는 ‘비문화적’ 인사들에 의해 회자되는 단어인 ‘콘텐츠’의 질적인 수준에 대한 고려이다. 개별작품의 수준문제가 아니라, 개별작품들을 하나의 개념과 체계로 묶는 관점의 전위성과 비전을 아르코가 한국 문화의 지평에 제시해 왔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대학로 100번지’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문제점이 내면화된 형태로 보여지는 증상으로서의 전시성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즉 아무런 특성이 보여지지 않는 전시, 과거의 기억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어 역사를 반복하는 전시의 단순성이 얼마나 많은 무의미를 생산하는지를 보여주는 행사이기도 한 것이다.


아르코미술관이 문화계 세력 다툼의 광장인가 

변화가 밀려올 때는 항상 그 변화의 물결을 되돌리거나 변화를 순기능화 시키는 시점이 존재한다. 그 시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리면 변화는 재앙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장에서 시각예술계의 중요한 포스트였던 장소를 단순히 지리적인 위치를 통해보는 표면적 관점을 가지고 공연예술의 한 부분으로 흡수한다는 생각은 결국 아르코 미술관을 문화계의 세력다툼의 광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해 미술은 인간의 존재문제와 얽혀있다. 그래서 미술이 종교적이고, 교육적이고, 장식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삶의 현실은 예술의 외적인 변화에 대해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이는 오히려 예술작품이 손에 잡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방성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핵심이기도 하다. 예술은 삶을 진정한 참여의 장으로 인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편적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종교적이고 사색적이고 유희적인 근본적 권리들은 제도가 요구하고 제공하는 의무와 권리들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다. 우리는 본질에 앞서는 현실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상처들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실은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정용도(1964- ) 뉴욕주립대 예술경영학 석사. 조선일보 신춘문예상(1998) 수상.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객원큐레이터 역임. 현 숭실대 대학원 미디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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