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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게이트정국과 블랙리스트 그리고 예술가의 분노

김노암

2016.11.12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악취가 진동하는 시절이다. 주위는 내가 이러려고 예술했나 한탄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지난 한 달 사이 극적인 상황의 변화 속에 벌어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그동안 문광부 주도로 추진되었던 문화정책들은 그 권위와 신뢰가 저 땅밑으로 추락했다. 얼마 전까지 미술계 쟁점이었던 미술진흥법안은 게이트 정국에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렸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일개 개인과 밀착하여 국정을 농단하며 최순실 딸을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우리의 세금을 사용(갈취)했다는 보도가 터지고, 현 문광부 장관은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자라는 뉴스가 터진다. 공공사업과 지원으로부터 영문모른 채 배제되어 온 예술인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이런 시국에 빈곤한 비전과 푼돈으로 예술인들의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겠다는 문광부의 정책은 어떤 감흥도 신뢰도 받기 어렵게 되었다. 오랫동안 소위 문광부 산하기관들과 예술인들은 거버넌스(협치)를 통해 민관이 함께 쌓아왔던 한국문화예술발전을 위한 노력과 신뢰는 내동댕이쳐졌다. 추리문학가들이 한탄하듯 각종 음모와 범죄가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이 진실로 막장이기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2016년 11월 9일 트럼프가 미대선에서 승리한 날 서울시 시민청 태평홀에서는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오래전 신학철 화가의 작품 <모내기> 검열사건을 변호했던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노순택 사진작가, 신현식 앙상블시나위 대표, 연상호 영화감독, 한창훈 소설가, 김미도 연극평론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정부(문광부)의 10,000여 명이 넘는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정부산하기관에 이들 블랙리스트에 들어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공공지원을 막거나 방해하는 공작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지난 시기 청와대와 정부의 치졸하고 악랄한 예술인에 대한 억압과 지원금(돈)을 악의적 도구로 현 정권에 비판적인 또는 과거 비판적이었던 예술인들을 본보기로 망신을 주고 창작 의지를 꺾은 사례들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노순택 사진작가는 블랙리스트를 ‘돈 주면 안 되는 애들’로 본 것으로 예술가들을 돈줄을 조이고 푸는 방식으로 얼마든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 것으로 비판했고, 연상호 영화감독은 독립영화 분야의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는 영화현장에서 실제로 효과를 본다며 씁쓸해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의 주장에 따르면 청와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문광부는 산하기관에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공공지원금 지원을 하지 못하게 지시와 압력을 행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의 실무자들은 업무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양심의 갈등을 겪으며 정의롭지 못한 문광부의 지시에 따라야 했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야 했다. 그 과정에 말도 못할 ‘자기검열’의 내적 고통을 겪어야 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이날 토론의 결론이 한데로 모이지는 않았으나 결국 정부(문광부)의 인적 쇄신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예술인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상황은 문광부는 셀프 개혁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현 게이트 정국에서 청와대와 정부는 신뢰와 권위를 잃었고 어떠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공성의 가치, 예술의 가치, 정의의 가치 등을 상실했다.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정황이 확실시되는 자가 국가의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의 수장으로 있다는 사실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얼마나 저열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파산과정을 밟고 있는 창조예술산업 관련 정책과 사업들을 배제하고 새롭게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고심해야 한다. 단연코 문광부를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창구로 사용한 이들을 솎아내고 공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영혼 없는 조직원(공무원)으로 좀비처럼 공공기관과 제도와 우리의 세금을 사금고화처럼 사용한 이들의 수족 노릇을 마다치 않은 이들의 과오를 일소하고 정상화할 것인지 지혜를 모으고 연대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실무자 대부분을 마치 국가와 국민을 담보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한 악당들의 부역자인 양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여하간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을 다시 떠올리며 지금 예술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 김노암(1968-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 세종문화회관 전문위원(2015),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2013-14),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2004, 2006), KT&G상상마당 전시감독(2007-10),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2010-12) 역임. 『바나나 리포트』(두성북스, 2013) 저술, 『미술에 관한 모든 것』(틔움, 2013) 번역. 현 아트스페이스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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