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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공공미술로서의 미디어아트 : 수평성과 수직성

조선령

지난 8월 7일, 인천 송도의 ‘투모로우 시티’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구현되었다. 아트센터 나비가 주최한 이 프로젝트는 건물 앞 오픈씨어터에서 ‘Come Join us Mr. Orwell’이라는 제목으로 1984년 백남준이 구현했던 위성아트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보여주었다. (백남준 아트센터도 여기에 프로그램 파트너로 참여하였다) 백남준은 미래사회가 개개인의 인간을 감시하는 거대한 수직적 감시망을 구축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우려를 일소하면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전세계를 수평적이고 평등한 소통의 문화로 엮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비롯한 <스페이스 오페라 삼부작>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지난 7일의 프로그램은 호주와 한국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진행하면서 이러한 메시지를 계승하는 동시에 전광판 상영과 인터렉션을 결합한 좀 더 공공미술적 구현방식을 선택했다. 예컨대 호주 작가 레온 크미엘루스키, 조세핀 스타, 아담 힌셔와 한국작가 최승준의 <SMS Origins>는 관객들에게 자신이 태어난 곳과 부모님이 태어난 곳을 문자로 전송하게 하고 그 결과를 전광판에 다양한 조형적 형태로 시각화했다. 양민하는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 공연에 맞춰 사운드에 반응하는 미디어 영상을 소개했다. 유럽의 5인조 미디어 그룹 AntiVJ는 투모로우 시티 건물을 배경으로 사운드 아트와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작업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 프로그램은 송도에서 상연된 이후 사이버 공간과 도심 전광판을 연결하는 스트리밍 뮤지엄(streaming museum)과의 협력으로 세계 7개국 전광판을 통해 상영된다. 작품 중 일부는 을지로 SK T-타워의 미디어 갤러리 COMO에서도 계속 상연된다고 한다.


미디어아트나 위성아트라는 범주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새롭게 눈에 띠는 경향 중 하나는 이처럼 도시환경 혹은 건축과 미디어아트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전광판 상영과 전세계 도시와의 연결을 시도한 투모로우 시티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AntiVJ의 작업은 미디어 파사드라고 불리는 최근의 경향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갤러리아 백화점이나 강남 GS 타워가 도입해서 관심을 받게 된 미디어 파사드는 좁게는 전광판 광고의 확장으로 인식되지만 더 나아가서 건축과 미디어아트의 결합 가능성, 혹은 공공미술로서의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분야로 간주된다. 최근 눈에 띄는 비슷한 작업으로, (LED 전광판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립미술관 외벽에 영상을 투사하는 그룹 뮌의 ‘라이트 월(light wall) 프로젝트’(8월1일-9월20일)도 있다. 강남구청이 강남역에서 교보생명 사거리 도로변에 설치한 미디어 폴(media poll)도 비슷한 성격으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작업들이 굳이 예술의 외피를 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다보니 도시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점에서 공공미술에 근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거꾸로 아트월드에서 보자면 미디어아트가 공공미술에 접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향은 한편으로는 딱딱하고 물리적이며 수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경관을 뉴미디어의 유동적이고 비물질적인 성격이 좀더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단순히 멋진 조명을 켠다는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제어되는 다양한 변화형을 보여주고 또한 벨기에의 Dexia 타워의 경우처럼 대중들이 직접 입력한 데이터가 건물 외관에 구현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공공미술의 참여적 성격을 도입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수평성을 위협하는 수직성에의 집착 역시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투모로우 시티 건물 자체는 상당히 수평적 성격(오픈 씨어터는 지면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다)을 갖고 있지만, 이곳이 소개된 것은 세계 최대, 최고의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듯한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일부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인천세계도시축전 현장에 가보면 넓은 매립지에 하늘 높이 솟은 남근적 건물들이 매우 수직적인 느낌을 준다. 백남준이 꿈꾸었던 기술에 의한 수평적 소통은 어쩌면 이러한 첨예한 욕망들의 접점에 관한 고민이 없을 경우 나이브한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새 얼굴로 등장하고 있는 공공 미디어 작업들이 수평적이고 참여적인 도시의 프로젝트들인지, 아니면 폴 비릴리오가 말한 ‘투명성에의 광기’인지. 어느 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령(1968- ) 홍익대 대학원 박사. 이동석 전시기획상(2011) 수상.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대안공간풀 객원 큐레이터 역임. 현 백남준아트센터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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