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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미술품의 가치

김인선

“가격과 가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느 회의석상에서 던져진 질문이다. 답은 “‘가격’은 내가 줘야하는 것이고 ‘가치’는 내가 가져가는 것.” 내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보다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을 때 고객은 만족한다는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답이다. 물건 구입시 소비하는 주체가 가장 자연스럽게 따져보게 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특히 보통의 물건을 구입할 때는 같은 용도의 다른 회사의 제품 가격대가 비교되기 때문에 쉽게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입 대상이 미술품일 경우에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는가? 미술에 대해서도 기성품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답은 간단하지만 정작 미술에 대한 복합적인 성격을 안다면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답이 되고 만다. 실제로 개성이 다른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무엇을, 왜 선택하느냐에 따라 예상치 못한 결과가 드러나기도 한다. 


미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겠지만, 미술계의 시스템은 다양하다(크게는 영리 시스템과 비영리 시스템으로 나뉠 수 있겠다). 가치관에 따라서도 똑같은 미술품도 그 활동 영역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 같은 장소에서도 작가의 태도, 기획자의 태도, 관객의 태도, 구입자의 태도, 기관의 태도는 다르고, 같은 작품이라도 이들의 색다른 취향에 따라 색다른 가치가 붙여진다는 것이 미술의 딜레마이자 묘미이다.


몇 년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미술시장에서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가격이 매겨지며 컬렉터의 수도 급증했다. 이 현상이 한편으로는 미술계에서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이루어내기도 하였지만 우려의 목소리 또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일 판매기록을 보도하는 인터넷 언론과 신문의 영향으로 작품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일반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므로 이 열기가 주식시장이 주기적으로 바닥을 치듯 경제상황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 가을부터 눈에 띄게 악화된 전세계적 경제 침체로 미술 시장은 함께 잠잠해졌다. 그 와중에서도 낙관적이었던 의견은 한국의 현대 미술도 컬렉터 층을 점점 두텁게 형성하기 위한 과도기를 거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위의 내용이 미술 시장에서만 한정될 수 있을까?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등의 비영리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영리 기관들은 작품의 판매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을 뿐 관람객의 선호도에 대한 반응에 민감하다. 작품에 대한 선호도의 척도인 관람객의 수치는 곧 기관 운영의 원활함으로 이어진다. 이때는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보다 흔히 이야기하는 ‘대중성’을 그 척도로 가늠한다. 관람객 수에 따라 입장료 수입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기관 시스템에서는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한다. 대중을 위한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면 관객의 호응도가 커지고 기관 운영 유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기 때문에 아트 마케팅이 여기서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된다. 따라서 대중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어주거나 혹은 그들을 즐겁게 자극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대안공간도 마찬가지이다. 실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라 대중성과 판매이익 둘 다 여의치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운영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업 등의 후원이 필요하고 후원처의 공감을 만들 수 있는 컨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수준 높은 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있는 효과를 가진 작품이 가치를 가진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미술이라는 영역은 ‘창조’를 바탕으로 삼는, 편협한 의견을 피력하기에는 심하게 자유로운 세계라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식상함을 탈피하고자 하는 성향 때문에 사회는 진화하고 있으며 미술의 역사는 다양한 이즘(ism)으로 채워진다. 새로운 것에 대한 비판이나 찬동으로 미술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함께 생성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현재가 중요하고 수년, 혹은 수 세기를 내다보기 힘든 우리들은 지금으로서는 돈으로 가치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시장의 원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왕에 가격을 치르는 입장에서 -그것이 관람료이건, 작품 구입료이건, 나의 시간을 대가로 치르건- 가치에 대한 나의 기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치른 가격 보다 더 큰 가치를 얻고 있는지. 더 멀리 보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 더 크다는 가치의 기준을 가장 우선적으로 스스로의 취향에 둬야 할 것이고 이 때 타인의 일차원적인 수치, 즉 ‘가격’으로만 그 데이터를 들이대면 곤란하다.



김인선(1971- ) 미국 Pratt Institute NY 미술사 석사. 대림미술관 학예실장, 부산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사무국장,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인터알리아 아트디렉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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