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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작가는 무얼 먹고 사는가

신보슬

1.

누군가 물었다. “작가는 무얼 먹고 사나요?” 작가가 답했다. “이슬” 여기에서 이슬이라 함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째, 제대로 먹고살지 못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고, 둘째, 소주 ‘참이슬’에서 ‘참’을 생략한 줄임형이다. 그만큼 작가로서 먹고살기는 힘들며, 술도 많이 마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사실, 작품판매와 전시를 통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들은 그리 많지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는 투잡족이다. 물론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거나 입에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경우는 논외로 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강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재료비에 조금 보탬이라도 될까하여, 혹은 적지만 일정한 수입을 포기할 수 없어 강단에 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들어오는 수입에 비한다면 투자해야 할 시간이 너무 크다.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서, 전시를 통해서 먹고 살수는 없는 것인가.


3.

한 스페인 작가가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웹사이트를 만들고, 해킹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이 작가는 심지어 미디어 액티비스트이다. 오픈 소스, 크레이티브 커먼스 등의 언저리에서 활동하기에 이 작가의 작품을 사고파는 것은 거의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늘 궁금했다. 도대체 뭘로 먹고 사는 것일까. 그러다 얼마 전 그 궁금증을 풀 기회가 생겼다. 해답은 생각의 차이였다. 스페인 특히 바르셀로나의 경우에는 작가들이 전시를 하게 되면, 작가는 당연히 작가비를 지급받는다. 만일 미술관과 같은 기관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면, 최소 6,000유로 정도의 작가비를 받는다. 물론 여기에는 작품 제작비나 운송비, 전시장 구성비, 혹은 여행 경비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거나 그룹전의 경우에도 소정의 작가비가 지급되고, 비디오 작품의 경우에는 스크리닝 비용이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결국 작가가 전시를 하게 되면, 일정 수입이 생긴다는 것이다.


4.

작가지원비 필요하다

우리 작가들은 전시를 하게 되면 할수록, 통장에 마이너스가 깊어간다.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은 물론이고 국공립 미술관의 전시에도 작가비가 책정되어 있지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유는 분명하다. 예산이 너무 적어서.... 간혹 어이없는 이유도 있다.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게 되면 작가의 자산이 되기 때문에 제작비 지원은 안 된다고 하는가 하면, 전시를 만들어서 작가에게 경력을 키워주는데 왜 돈까지 줘야 하냐는 경우도 있다. 예산이 없다면 작가 수를 줄이면 되는 것이고, 다른 비용을 좀 줄여서 조금이나마 작가들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작가비를 희생시켜서라도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홍보비는 지켜야하며, 명색이 국제전시이기 때문에 참여 작가수를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어도 작가가 작가비를 운운하지 않았는데 요즘 작가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작가로부터 작품을 받을 수 없다면 과연 전시 자체가 가능할까? 금액의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가 문제이다.


5.

어쩌면 이 이야기는 여러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주기싫어 안준 것도 아니고 상황이 그러했을 뿐인데, 가뜩이나 예산상의 이유로 전시 만들기 어려운데 더 어렵게 만든다며 핀잔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분들 역시 내심 바뀌어야하는 상황임을 모르지 않으실 것이다. 물론 몇 푼 안 되는 ‘상징적인’ 작가비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정말 작가비를 지급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미안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오히려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작품이 없이는 전시도 없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만 이해하면 된다. 작가들도 작가비를 받아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좋은 작품은 나오지만 좋은 제작풍토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을 아끼는 마음만큼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실질적인 예의는 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적어도 작가가 이슬만 먹고 산다는 씁쓸한 유머를 내뱉는 그런 상황만은 바뀌기를 기대한다.



신보슬(- )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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