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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다름의 공존을 요구하는 공동체

이선영



노기훈, Garwol-dong_yongsan_Seoul, 80×100cm, transparency in lightbox, 2014

세계화에 기반한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은 위험의 편재이다. 정부군과 반군, 또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 등의 끝없는 분쟁으로 전쟁터가 된 조국을 떠나는 난민들은 목숨을 건 항해를 하곤 한다. ‘디아스포라’ 등 낭만적으로 포장된 정치적, 경제적 난민들은 여기를 떠나 거기로 가지만, 여기나 저기나 동일한 지배질서는 이동을 무색하게 한다. 과거에 열강의 식민 지배에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난민들은 분쟁의 씨앗을 남겼던 유럽으로 가서 또 다른 위험요소가 된다. 빈부격차가 위험을 키우는데, 유일한 지배체제인 자본주의는 이 격차를 더 키우기 때문이다. 선진국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인 미국에서는 올해에도 대형 총기 사고가 연이어 터져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서 총기 관련 사망자 수는 작년에만 3만 8,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가장 안전한 나라에서 매해 소리 없는 전쟁으로 수만 명이 죽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총으로 비명횡사를 한 사람 중에는 총기 살인이 36%를 차지하지만 자살도 60%나 차지한다. 총기 살인보다 두 배로 높은 총기 자살자 역시 더불어 살아가기에 대한 회의가 낳은 비극이다. 자살 또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 범죄에 못지않은 공동체의 실패인 것이다. 공동체는 다만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반응이다. 세계가 같은 질서하에 경쟁하는 현대는 과거보다 더욱 위험하다.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자기들만의 높은 울타리를 친다면, 가난한 자들은 생존을 위해 집단적 해결책을 도모한다. 공동체의 위상은 전통이나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당위를 떠나서, 자연에서 발견된다. 노을 지는 늦가을 하늘을 시시각각 기기묘묘한 실루엣을 만들며 날아가는 수만 마리의 새 떼들은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아름다운 새의 무리는 각자이면서도 하나를 이룬다. 올해 서울시에서 추진한 사진 축제의 주제 ‘성찰의 공동체; 국가, 개인,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의 의미를 살펴본다.

크고 작은 공공미술이 많이 시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공동체란 익숙한 주제라고 할 수 있지만, 작년 이맘때 촛불혁명을 겪은 한국사회로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딱 1년 후에 되돌아보는 2016년 겨울이야말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따져 볼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정권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 황당한 추문들은 ‘이게 나라냐!’ 하는 탄식과 더불어 그에 저항하는 다중(多衆)을 낳았다. 사유화된 국가에 대해 공동의 사회가 대립했다. 사유화된 국가가 한 줌의 이해 공동체에 불과했다면, 공동의 사회 구성체는 다양했다. 그러한 다양함은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한 집단은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본모습을 보여준다.



정영돈, Calibration 구상안, 24×30cm each, pigment print on matte paper, 48 frames of different colors, 2017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에서 열린 특별전 ‘공존의 스펙트럼 그 경계와 바깥’(11.3-11.23)(기획: 이필)은 공동체의 가장자리에 놓인 이들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비춘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스펙트럼’, ‘경계’, ‘바깥’ 같은 전시의 키워드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독특한(그래서 아름다운) 부분이 바로 가장자리임을 알려준다. 가장자리는 같음과 다름이 갈라지는 민감한 영역이다. 기획자는 공동체 대신에 ‘공존체’라는 개념을 통해 맹목적인 같음이 아닌 다름의 공존을 강조한다. 참여 작가들은 20-30대의 청년 작가들이기에 고시원 거주자나 노숙자 등 가장자리에 놓인 이들에 대한 작업들이 결코 외재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신참자들에게 요구하는 배타적 기준에 의해 ‘취약한’ 계층으로 몰린 젊은이들 또한 동병상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예술가 아닌가. 또한 이 전시는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작품 출품이 장려되었기에 많은 워크숍과 모임을 가졌고, 일시적이나마 작가들의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하나의 이상화된 공동체 대신에 실재하는 것은 일시적인 공동체들이다. 하나의 기원과 목표를 가지는 견고한 공동체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행동하는 일시적 공동체들은 다름의 공존을 요구하며 예술가 집단부터 시민사회까지 보편적이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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