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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009 미술계 결산-그 많던 미술인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박영택

미술인이란 어떤 이들인가? 오늘날 미술인들은 실종되었다. 올 한 해도 여전히 미술과 연관된 수많은 사건들이 현기증 나게 줄을 이었지만 미술계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2009년 1월 15일 오전 종로구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 부지 강당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 이명박 대통령이 깜짝 출현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기무사 부지를 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많은 미술인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단지 미술관 하나가 그곳에 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선심쓰듯이 발표하는 저의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며칠 후 용산 4구역 철거현장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 몸을 떨며 시위를 하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불에 타서 숨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라는 책자가 나왔고 전국 시사만화가협회 회원들의 관련 그림이 모아졌다. 80년대 광주 이후 한 시건을 중심으로 많은 그림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지만 어느 미술인들도 이 문제에 대한 발언하거나 이를 주제로 한 작업을 형상화한 예를 잘 보지 못했다. 그저 모두 잠잠했다. 광주에서는 MB식 불도저 정책을 풍자한 ‘삽질공화국’이란 작품이 국정원의 개입으로 철수된 사건도 있었다. 80년대가 순간 떠올랐다. 그런가하면 두 전직 대통령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죽었다. 미술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장과 문예진흥원장 등이 강제로 사퇴를 당해도 고요하고 4대강 사업과 행정신도시 이전과 관련된 문제가 온 나라를 들쑤셔 놔도 이곳 미술계는 그저 조용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미술시장이 불황이라는 걱정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슬프고 비참한 사건, 참사가 연이어 터져도 내 일이 아니면 해서 내가 운좋게 살아남았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이불을 목 밑까지 잡아당기고 곤한 잠을 청했다. 


10월 9일 광화문 서울광장에 무지막지한 세종대왕 동상이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들어섰다. 북한의 거대한 동상들이 떠올랐다. 얼마 후 그 뒤로 스노우보드 경기장이 가설되어 동상 뒤로 휘까닥 뒤집어보이는 묘기들이 연출되었다. 서울은 온통 디자인바람이 불어 간판과 가로등이 획일적으로 정비되고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멋진 디자인도 좋은데 그게 특정 취향과 기준으로 천편일율적으로 되는 것은 문제일 것이다. 비자금과 연루되었다는 <행복한 눈물>의 뒤를 이어 <학동마을>이 그림 로비에 연루되어 시끄러웠다. 리움과 로뎅은 보란듯이 문을 걸어잠군지 오래고 십 수억원어치 그림을 팔았다는 로비와 연관된 혐의를 받고 있는 화랑도 굳게 문을 닫았다. 그래도 리움미술관장은 여전히 한국미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뽑혔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여기 미술계는 적막강산이다. 도대체 미술인들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 이들인가?


미술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시장 뿐이다

미술은 항상 당대의 삶에서 유래하는 핵심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한다. 예술은 현존하는 삶에서 늘 새로운 삶, 보다 인간적인 삶을 꿈꾸기에 기존 삶의 가치관이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에서, 비인간적인 삶이 강요되는 지점에서 먼저 파생한다. 예술가는 세계와 현실에 대해 불만이 많은 자들, 의심이 많은 자들이다. 세계와 불화하는 이들이다. 그것은 이 세계와 삶이 불만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되는 정치적, 시회적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이런 식의 삶이 아닌 다른 식의 삶에 대해 발화하는 존재가 예술가다. 그러나 이곳 미술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시장이다. 자본이다. 대학생부터 중진이나 원로작가나 한결같이 작품판매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다. 이전에 비해 너무 많은 혜택에 노출된 젊은 작가들은 누가 지원금을 받았고 어느 레지던스에 들어갔으며 누가 잘나가느냐는 정보와 소문에만 귀를 기울인다. 미술은 이제 정보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 정보를 잘알고 활용하고 그에 맞춰 자료를 만들고 ‘들이대고’ 줄을 대는 게 작업이 되고 삶이 되었다. 정글같은 시회에서, 미술계에서 생존이란 것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오늘날 비평 역시 주류에 편승하거나 시장을 따르는 일이되었으며 모든 큐레이터들은 시장 강박증을 갖고 대중동원과 메스컴을 의식해 기발하고 재미있고 엽기적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품만을 경쟁적으로 선호한다. 당연히 작가들은 비평이나 예술의 역할과 기능, 고민 등에 대한 관심을 버렸다. 보기 좋게 패키지화 되거나 시장적 임팩트가 강한 작품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시장에서 선호되는, 뜬 작가들의 작품이 전거가 되고 진리가 되었다. 해서 극도의 이기심과 경쟁논리만이 무성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미술관 연관된, 삶과 연동된 수 많은 논의들이, 문제들이 제기되어도 여론이 없는 이유다. 그 많던 미술인들은 죄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를 포함해 우리 미술인 모두가 ‘루저’였던 2009년 한 해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박영택(1963- ) 성균관대 석사. 마니프 미술평론상(1995) 수상. 아트포스트 기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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