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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시장과 그림에 대해

강선학

시장과 그림에 대해

_2010 화랑미술제-부산전



전국적인 아트페어라는 이곳에서 한 때, 아침 화훼시장을 옮겨놓은 듯 꽃이 지천을 이루더니, 지난번에는 채소장과 과일장을 옮겨 놓은 듯 사과와 포도, 콩과 대추가 넘쳐났다. 근데 올 해는 아이들 동화책에나 나올 듯한 이야기들로 수선을 떨고 있다. 삽화 정도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다양성은 서사의 회복이라는 후기모더니즘의 진단을 무색하게 한다. 서사의 회복은 모더니즘이 놓쳤던 현실에 대한 시선의 회복을 지적한 것이었지만 현실은 없고 달콤한 이야기와 유치한 환상이 결합된 가짜 이야기들이 판을 이루고 있다. 아트페어가 시장이라지만 가짜 이야기를 파는 곳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파는 곳이다. 진짜 이야기의 미감을 논하면서 때로는 위장하거나 과장하면서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고 담합하는 곳이다. 거기 화단의 정치도 있고 화랑금융을 새로운 형태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고심이 있다. 그러나 이미 이름을 얻은 작가들은 작년이나 올해나 그만그만한 작품으로 여기저기 얼굴로 내걸렸고, 알만한 작가들은 팔릴만한 소재와 기법으로 재기발랄하게 들락거린다. 나머지는 지난 아트페어에 보였던 인기상품을 재탕 삼탕 해서 알듯 모를 듯 대열에 끼여 있다. 



그러나 작품매기는 의문부호를 돌려놓은 듯 높은 벡스코 천정 아래로 자유롭게 떠돌고 관람객들은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다급한 현실 이해와 매매에 조급한 작품들로 전시장은 복작거린다. 정말 작품을 구매할만한 사람들의 수준에 대한 배려, 조사, 이해가 있기나 한 것일까. 그저 새벽시장처럼 잠시 북적대는 사이, 물건 임자가 나서면 묻지 않고 팔고 그렇지 않으면 파장을 하는 그런 곳 같다. 좋은 고객은 좋은 상품이 만든다. 좋은 상품을 확보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운영의 전략이어야 하고, 환금성의 보장이라는 신뢰도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 아닌가. 이미 작품가격이 일반 상품과 비교될 수 없는 고가이고, 구매가 구매자의 취향이자 책임이라 하지만 환전의 보장이 없으면 시장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막상 이번 상품들의 모양은 그런 환전을 보장할만한 정도인지 의심스럽다.


그림의 가격으로 심미적 판단을 할때 키치화된 대중성으로 바뀐다

아트페어니 국제미술행사니 해서 일반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그림값은 일반적이지 않다. 게다가 옥션이니 무어니 해서 이미 일반인들도 미술품을 새로운 재원이나 투기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 구매에는 단순한 미적 향수의 욕구가 아니라 다른 욕망들이 넘친다. 이도저도 아닌 관객은 정말 관객으로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시장의 성패는 어디 있을까. 시장이 깊이 개입되면서 가격이라는 방법으로 작가와 작품을 신비화시키고 본래 의미에서 떼어내어 볼거리로 나돌게 한다. 이 추세는 새로운 교양으로 치환되고 키치를 가격으로 심미화 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림의 가격으로 심미적 판단을 대신하려할 때, 취향이나 향수, 혹은 감상이라는 비가시적 가치는 키치화된 대중성으로 바뀌고 만다. 그것은 가치가 아니라 유통되는 대중적 감성이자 일시적인 호사일 뿐이다. 그리고 심미적 판단이나 취향을 타락시킨다. 그런 느낌이 유독 나에게만 있는 것일까. 도리어 화상들이 더 잘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급하다는 것이고, 이런 경우가 계속된다면 파장 무렵의 난장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사고파는 것이 당연하고 이윤을 취하는 것은 일상의 일이다. 미술시장도 그렇다. 그런데도 편치 않은 것은 작품이 냉장고 따위의 상품이기보다 사유임을 부정할 수 없는데 연유한다. 돈이 심미적 판단으로 둔갑하고 향유의 격조가 투기가 되면, 감상과 향수와 교양은 교환가치로 몸을 바꾸고 만다. 상품 가치가 심미적 가치로 될 때, 심미적 판단, 혹은 취향은 퇴락하고 돈과 호사취미로 포장된 키치가 예술로 둔갑한다. 더구나 자신의 눈에 의한 취향이나 감상력은 없고 귀로 듣는 가격이 실제적 가치가 된다. 그것은 시장 커무니케이션이나 메카니즘을 사회 안전, 생태, 법집행처럼 안전장치로서, 그것을 화랑이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조작한다. 미술이 연극의 조건이 되면 ‘인사동 스캔들’은 피할 수 없다.


미술품의 소장은 조심스럽고 전문적 감식안과 시간적으로 멀리 내다보는 투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관람객이나 새로운 소장자에게 심어줄 수는 없을까. 향수 혹은 감상이란 재화의 간접적 표현 혹은 과시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지만 눈앞의 이윤에 유달리 집착하는 시대에 정지와 성찰을 새로운 전략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일까. 외국 아트페어를 호들갑을 떨며 찬양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호응 아니었던가. 그마저도 돈이고 환상일 뿐인가.



강선학(1953- ) 부산대 미술학 석사. 서울신문사 서울문화예술평론상(1990) 수상.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역임. 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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