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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팅커벨의 귀환

문정현

동시대 미술작품의 유통과 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각도의 모색이 촉진되고 있다. 매해 성대하게 개최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외에 대안적인 미술 장터로 자리를 잡은 유니온아트페어(2018.9.28-10.7)가 성수동의 에스팩토리로 자리를 옮겨서 한 차례 더 성공적인 장을 마련했으며, 합정지구와 학고재를 포함한 16개의 공간이 서대문구의 영천시장에서 의기투합하여 갤러리당 작가 한 명을 선발하는 규약 하에 ‘Solo Show’(2018.10.25-10.28, 해담하우스)를 열며 색다른 미술시장을 실험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PACK 2018: 팅커벨의 여정’(2018.11.9-11.18, 공간사일삼)은 작년 한 해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미술장터로서 별도의 논증을 요한다.



‘PACK 2018: 팅커벨의 여정’ 2018.11.9-11.18, 공간사일삼

아트프로덕션 리사익(Riverside Express)에 의해서 2회째를 맞이한 팩(PACK)은 패키지(Package)에서 따온 어감의 톡 쏘는 뉘앙스와 같이 정육면체의 투명큐브 및 자물쇠와 열쇠 이상 세가지 요소에 따라서 이행되는 구매 절차로 독자적인 형식의 시장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 모두 40㎝의 일률적인 입방형 금속 큐브에 다양한 매체와 양식의 작업을 반듯하게 진열한 쇼룸에서 관객의 시선은 유리표면들을 차례로 훑게 된다. 이처럼 일정하게 규율된 공간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팩은 가장 압축적인 전시환경을 표방하겠다는 주관대로 여타의 미술시장과 변별적인 상품 미학의 관점을 투영한다. 모든 참여작가들에게 획일적인 조건으로 주어지는 알루미늄 판넬의 디스플레이 환경과 구조로부터 그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작업이 유통과정의 일환으로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의 크기나 형태의 여하에 관계없이 모두 균일한 보관함에 넣고 전시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판매 외 별도의 독자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작품을 보증하는 서류나 구비양식을 진열장 안에 세워놓거나 혹은 그에 맞는 크기의 작품을 임의로 선별하여 제시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게 된다.

오희원의 <Fragment of Neverland> 시리즈와 차슬아의 < 네모난 수박>과 같은 작업은 큐브 속 생태계에 자신의 형태를 적용한 사례들이다. 최수진의 <물질의 정물화: 변주>와 같이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세 가지 정물에 대한 배치를 변주하는 에디션 작업에서는 실제 조각과 피규어의 영역을 횡단하며 작품인 동시에 상품으로서의 기시적인 거리감이 은닉됨을 볼 수 있다. 호상근의 <레옹이 저화질> 시리즈와 같은 작업도 실제의 회화와 소품 사이의 경계에서 와해되며 입방체의 공간에서 반자의적인 규칙으로 태동하는 미학적 실험을 엿보게 한다. 이외에도 팩은 작품이 작품으로서 판매되기 위해서 전시되는 형식의 일차원적 구조를 현실의 물류센터와 같이 교묘하게 와해하며 유의미한 비평적 지점을 연출한다.



‘PACK 2018: 팅커벨의 여정’ 2018.11.9-11.18, 공간사일삼

이처럼 큐브에 들어찬 작품들은 스스로 작가의 정수에 의해 제작된 산물임과 동시에 자본 가치의 교환에 의하여 입증되어야만 하는 상품임을 분열적으로 자인하며 유리관 밖으로 반짝반짝 존재감을 투사한다. 마치 인파로 붐비는 대형역이나 교차로에 좌우 일렬로 위치한 코인 로커 사물함에서 짐을 보관하고 꺼내는 경험과 흡사하게 주어지는 정방형의 규격은 각각의 구매자들이 팅커벨과 같이 먼 소실점의 시야에서 붕붕 유영하다가 땅 밑의 큐브로 날아와서 굳게 닫힌 자물쇠를 열어보도록 유인한다. 무대륙을 포함한 서울시내의 공간을 차례로 옮겨 다니며 선보인 1회때와 달리 문래동의 공간사일삼으로 돌아온 여정을 보듯이 항시 전제된 수송과 보관의 차원에서 이동용 수레로 진열장을 옮기고 어디든지 감쪽같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팩은 요정들의 가장 이상적인 귀환 장소인 것이다.


- 문정현(1982- ) 「슬기와 민의 단명자료 분석: This is not a Poster」로 제2회 2017SeMA-하나 평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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