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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한 갤러리스트의 짝사랑 | 김성호의 미술계 팩션(5)

김성호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지를 말이다. 참혹한 끝을 맞이해야만 하니까. 갤러리스트 김 씨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모든 미술가가 그동안 자신과 같은 마음을 지녔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순전히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술과 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갤러리를 시작했는데, 이 일이 짐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의 갤러리와 함께하는 작가에 대한 김 씨의 기대감과 애정은 유별났다. 그들은 그의 가족이자, 친구이며 동반자였고 연인이었다. 누군가 새로운 작업을 들고 올 때면 증폭되는 궁금증으로 흥분하기 일쑤였고, 누군가 기금 지원이나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올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어디 기쁜 일뿐이었겠는가? 해외 아트페어에 동행할 수 없었던 몇 작가들이 매번 눈에 밟혀 안타까웠고, 그곳에서 누군가의 작품이 모두 팔렸을 때 작품을 기대만큼 팔지 못했던 누군가가 꼭 한두 명씩 주위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만 없기도 했다.




5년 혹은 10년 넘게 자신과 함께해 온 작가들! 그들 중 누구를 특별히 편애했겠는가? 김 씨는 모두를 가족처럼 사랑했다. 그것이 짝사랑인 줄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최근 사비를 털어 한옥을 개조한 아담한 창작 스튜디오를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분기별 비평 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인큐베이팅을 도모했는데도, 그것을 고마워하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작가들로부터 매년 작품 한 점씩 받는 일을, ‘돈이 될 작품을 가난한 작가로부터 강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가 자신을 ‘문화 예술 사업가’라는 위상의 갤러리스트로 자부심을 지닐 때, 작가들은 그를 늘 장사꾼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년 열리는 오픈 스튜디오를 위해서 그가 쓰는 돈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작가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특별히 고마워하지 않았다.

이웃 갤러리스트가 물었다. “그런 것을 하는 것보다 한두 점이라도 작품을 팔아 주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다른 일에 관심을 두지 말고 화랑 일에만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물론 갤러리스트에게 화랑 운영 외에 무슨 더 큰 일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갤러리의 작가들을 위해서,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이 함께 네트워크를 이루는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벌여 왔는데, 작가들로부터 진정성조차 의심받자 그는 심한 번민에 휩싸였다.

초대한 개인전에서 행여 작품 판매가 부진했을 때는, 작가들은 스스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갤러리가 늘 뒷받침을 못 한 탓으로 여겼다. 이때, 그가 작품을 대신 샀던 것을 최소한 고마워할줄 알았는데,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도 더러는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들이 늘 그를 ‘작품을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으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아서라! 갤러리스트 김 씨는 이제 짝사랑을 그만두기로 했다. 성공을 찾아 매진하는 그 많은 작가 속에서 ‘전속’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필요로 하고 서로 사랑하는 작가’를 찾기로 한 것이다. 옥션과 메이저 화랑이 합치된 삐딱한 구조의 한국 시장에서, 몇몇 화랑이 해외 작가들을 등에 업고 종횡무진하거나, 단색화의 끝없는 질주를 도모하는 비좁은 이 땅에서, 그리고 외국계 갤러리들이 현지화 전략으로 스멀스멀 침투해 들어오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갤러리스트 김 씨는 마음을 다잡는다. 한국의 꿈 많고 역량 있는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책임지고, 그들과 함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생해 나가는 ‘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갤러리에서 진정성 있는 ‘문화 예술 사업가’로 살아남기를 말이다.

*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 김성호(1966- ) 파리1대학 미학 전공 미학예술학박사.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중앙대 겸임교수,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2015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총감독,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역임. UNIST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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