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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사회적 위기와 예술가

이선영

계층화된 현실에서 위기는 사회적 약자를 더욱 위기에 빠지게 하고, 그것은 또다시 위기를 만든다. 최근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인 코로나가 장기화되자 민초들의 저항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저항하는 이들은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이 대량 생산되어 모두가 공평하게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이 언제일지 모르는 가운데, 부의 분배와 더불어 위험의 분배 또한 양극화된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누구나 재택근무를 하면서 비대면으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곧 괜찮아지리라는 기대 속에 계속 연장되며 실행된 봉쇄 중심의 미봉책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에 의해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예술가는 어떠한가. 애써 준비한 전시가 시도 때도 없이 열렸다 닫혔다 히니, 미술관 관계자들이나 작가들은 오죽 답답할까 싶다. 미술관 봉쇄가 풀린 틈에 잠깐 가본 어떤 전시는 작품만큼이나 코로나에 대처하는 세세한 준비가 감동적이었지만, 불과 며칠 후 ‘당국의 지침’에 의해 다시 봉쇄되고 말았다. 현대미술이 전시되는 장소는 원래 한꺼번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 한갓진 시공에 존재하는 미술작품은 우연히 그곳에 들른 존재를 변모시키는 예기치 못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보다 긴 호흡을 가지는 예술은 진지한 소수를 다수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오래된 미래’ 전시전경, 사진제공 김승택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은 그들의 삶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예술은 중산층이나 향유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정작 예술을 생산하는 자들은 중산층이 아니다. 늘 위기 속에서 창조되던 예술은 위기의 시대에 더욱 공감을 줄 수 있다. 미술관은 눈으로만 보는 곳이라서 위험한 침방울이 튈 염려도 별로 없다. 대부분 만지는 것도 금기다. 즉 미술관 봉쇄는 불가피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공연장, 경기장, 도서관 등과 더불어 봉쇄가 풀리기 시작했다. 객석의 일부지만 봉쇄가 풀린 야구장에서 어떤 팬은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나타나 ‘경기고 뭐고 간에 야구장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감동적 상황이 확정된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미술관의 경우 예약제로 해서 계속 열어도 큰 문제 없는데, 공권력이 뭔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공공정책의 본보기로 일찌감치 희생되었다는 느낌이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밀집, 밀접, 밀폐’된 다른 장소들, 가령 수십 개의 작은 방에서 1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한다는 강남의 업소나 교사, 학생, 간호사 등이 포함된 수백 명의 고객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이태원 클럽 등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본격적 관리에 들어가지 않았나.

봉쇄기간 동안 작가나 미술관 관계자들이 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미술관에서는 행사가 없다고(없어졌다고)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심지어는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확진자 관리 등에 미술관 인력을 동원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어디로부터인가 내려오는 비정상적인 결정이 관행으로 고착될까 무섭다. 특히 딱 그 시기에 해야 하는 시사적 성격을 가지는 전시 파행은 안타깝다. 4월에 열려야 했던 4.21 사북사태 관련 전시, 5월에 열려야 했던 5.18 관련 전시가 한여름에 겨우 열렸다. 전시가 아예 취소되는 경우는 더욱 심하다. 한 미술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작가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잡은 기회가 무산되자, ‘상부’의 지침에 반발하여 대안의 전시를 꾸리기도 했다. 미술관 근처 허름한 빈 공장에서 열린 ‘오래된 미래’전이 그것이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열린 이 전시는 미술관 시설과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았다. 전시가 열린 곳은 ‘사랑농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달고 있는 대안공간으로,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 불황에 빠진 지역 공장과 축사를 작품 제작 및 발표의 장으로 재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대안의 전시는 예술가가 상부의 일방적 처분에 맡겨진 수동적 존재가 아님을 알려준다.


- 이선영(1965- ) 미술평론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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