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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예술 마이스터 길드

문두성

독일 차량제조회사 Mercedes-Benz의 고성능 제품군인 AMG의 엔진은 한 명의 마이스터가 하나의 엔진을 전담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손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 엔진에는 마이스터의 서명이 새겨진다. 물론 그 뒤를 이을 견습공도 있다. 
출처: Mercedes-Benz Downtown Calgary 웹사이트


롤라이 Rollei 35, 대학 시절 잠깐 취미로 사용했던 6-70년대 생산된 독일제 카메라였는데, 카메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만한 물건이었다. 차갑고 단단한 돌덩어리 같은 그 느낌은 무슨 판타지 영화 속 마법의 돌 마냥 누군가에게 없던 취미도 만들어 낼 것 같은 신묘한 힘을 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 모두가 독일제 물건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독일에서 생산된 공산품은 항상 훌륭한 것으로 통한다. 악기, 자동차, 의료기기 등 특히 신뢰가 보장되어야만 하는 물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전문성이 극에 달한 자,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만든 물건은 결국엔 항상 그 나라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혹자는 독일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주도하면서 그 와중에 발전한 기술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보다도 매뉴얼화 할 수 없는 기술을 전수하고 발전시키는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은 민간으로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산업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비교적 늦게 산업화를 맞이한 독일은 주변 강국의 성장세를 따라잡기 위해 제도적 산업화를 강행해야 했다. 당시 독일의 경제 주체는 자본가, 마이스터(Meister, 장인)와 단순노동자였는데, 정부는 이들을 묶기 위해 과거 ‘길드’의 형태를 가져왔다. 그 결과 마이스터는 자신이 생산해 낸 결과물에 대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고 단순노동자는 마이스터로부터 도제식 교육의 형태로 기술비결을 전수하여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자본가는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며 전문가가 만든 것임을 뽐내며 판매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 쌓여 품질 상승을 끌어냈으며 이는 브랜드 마케팅의 토대가 되었다. 산업화에 밀려 도태된 길드의 형태가 한 국가를 기술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사회와 경제는 근대 이후 급성장하며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익숙해진 상태이다. 염천교 옆 수제화 공방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청계천 철공소들은 재개발 대상일 뿐이다. 장인은 별난 사람 취급이고, 길드는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단어일 뿐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장인의 도제식 교육을 구시대적 방법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전 나와 협업했던 예술가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이 현대적 길드-조합의 형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각자가 마이스터이고 동시에 도제였다. 전공도 다양했다. 회화, 조소, 도예, 디자인 등 각자의 작업에 매진하다가도 하나의 커다란 일을 위해 모여서 서로 가르치고 배웠다. 



규격화, 자동화되지 않은 공정은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사진: 이정형


나는 그들에게 박물관의 전시장에 들어갈 진열장 세트 제작을 의뢰했었다. 내가 전달한 것은 그 진열장을 주로 다룰 학예사의 편의성을 고려한 형태, 전시물과의 기능적 미적 조화, 가구로서의 내구성 등을 적은 문서 파일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구체화 된 아이디어를 시각화 실체화하며 마치 자신들의 작품처럼 변형하고 발전시켰다. 내가 가구공장이 아닌 이들의 작업실로 향한 이유는 자동화, 전산화로부터 탈피한 제작 공정은 비록 비효율적일 수 있으나 거기서 나오는 새로움은 또 다른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었다.그 가치의 발현은 예술적 미적 훈련을 받은 예술가들이 기술을 가질 때 가능하다. 이러한 가능성은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전문성이 되며 한 명의 마이스터로서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협업은 각자의 자아실현을 위한 하나의 동시대적 길드가 된다. 또한 이 조합이 만들어낸 규격화되지 않은 결과물은 순수예술과 공예의 영역을 천천히 중화시키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 문두성(1984- ) 철학, 미학 전공. 미디어 테크니션. 아트핸들러. 인천 학익여자고등학교 교사(2010),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2012-2016),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큐레이터(2017), 세계문자심포지아:황금사슬 큐레이터(2018) 등 역임. 전시기획, 작품 제작 및 전시공간디자인·시공 전문회사 Konlansoo Art Consulting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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