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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아카이브가 시각적 관습에 미치는 영향 - 시간의 종류들

현시원

구동희, <말보다 빠른 글>, 7분 10초, 2020
www.abstractcabinet.org ⓒ 구동희


2021년 지금, 아카이브를 접할 수 있는 기관, 공간, 상황이 더욱 늘어난다. 코로나 19 또한 큰 이유다. 직접 접촉과 대면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아카이브를 만들어 내는 일과 아카이브를 통과해 세계를 만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전 세계 주요 미술기관들은 온라인을 통해 전시하고 연구한다. 화가 에이미 실먼(Amy SILLMAN, 1955- )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소장품으로 기획한 ‘The Shape of Shape’(2019.10.21–2020.10.4)전을 그 어느 때보다 상세하게 ‘들려준다’. 유튜브(Youtube)를 통해 큐레이터와의 1:1 대화가 세계로 퍼진다. 얼굴을 드러낸 대화뿐이 아니다. 전시를 볼 수 있는 다양한 가상의 조건들은 이제 더 이상 가상이 아니다. 그것은 눈 앞에 펼쳐진 물리적 현실이다. 온라인 미술관과 극장, 버추얼 투어, VR 전시, 줌(Zoom)을 활용한 퍼포먼스 등을 다양한 미술 현장에서 접할 수 있었다. 온라인을 ‘손으로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생각이다. 이때 ‘눈 앞에 펼쳐진’이라는 개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카이브가 시각적 관습에 미치는 영향 중 오늘날 가장 우세한 변화는 모든 것이 동시에 ‘눈 앞에 펼쳐진’ 듯 보인다는 점이다. 
아카이브의 구현 방식이 엑셀의 그리드형 정보이든, 이미지로 배열된 갤러리형 정보이든지 간에 그것은 펼쳐져 있다. 온라인을 통해 게티센터(Getty Center)에서 소장한 15세기의 옷감 질감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소장한 20세기 초 한국의 색채에 대한 책자를 몇 초 사이에 연이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아카이브가 통과하는 대상, 주제, 태도는 여러 시대를 넘나든다. 그러나 아카이브는 보고 질문하는 이가 없으면 방치된 데이터일 뿐이다. 이 데이터를 값진 무엇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을 통해서다.

아카이브가 일궈낸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아카이브를 보는 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생산자, 수집가, 연구자들이 보낸 막중한 시간의 겹은 가벼운 현재의 시간대로 점프한다. 아카이브를 접할 때 우리가 갖는 사고의 변화는 그러므로,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아카이브를 접할 때마다 여러 겹의 시간대가 눈앞에 동시에 출몰한다. 눈이 시간을 돌파하는 감각이 달라지고 있다. 아카이브가 우리의 시각적 관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우리는 소설가 조르주 페렉이 『공간의 종류들』을 쓰며 질문했듯 ‘시간의 종류들’을 분별해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아카이브는 이질적인 대상을 일부 특정한 시스템 안에 통일시킨다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아카이브는 다양한 형식으로 현실에 등장한다. 아카이브는 도처에 있으나 여기서 전시와 책, 기관의 보관 시스템 등으로 한정해보자. 이때 아카이브는 다양한 수집 대상들을 발췌, 선택해 라벨 넘버에 따라 하얀 박스에 담기거나 유리가 덮인 어떤 거치대 안에 넣기도 한다. 프랑스 역사학자 아를레트 파르주(Arlette FARGE)는 책 『아카이브 취향』에서 ‘아카이브에는 촉지적 기억’이 있다고 쓰며 “과거의 아카이브를 지금 이용하는 것은 그(자료의) 부족함을 질문의 형태로 바꿔보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꿰뚫는 질문이 없다면, 아카이브는 우리의 사고를 파편적인 상태를 뜻하는 일종의 조각난 것으로 만든다. 아카이브를 보는 일에 익숙해진 눈은 주어진 대상의 원래 있던 위치, 그러니까 껍질을 벗기기 이전의 원래 상태를 잊어버리게도 한다. 물리적인 위치에서든 개념적인 의미에서든 원래 있던 자리까지, 아카이브가 챙겨오기에는 보관소(Archive)는 비좁다.

우리는 새로운 아카이브의 등장 형식과 방법론에 대해 상상할 필요가 있다. 책  『빅 아카이브』에 상세하게 설명된 초현실주의자들의 카드 색인, 플럭서스가 만들어낸 ‘플럭스 키트’, 그리고 작가 Sasa[44]가 반복적으로 수행해내는 ‘애뉴얼 리포트’, 안은미의 <은미고온> 프로젝트 등은 관습을 깨나가는 새로운 실행이다.


- 현시원(1980- ) 온라인 전시 ‘추상 캐비닛’(abstractcabinet.org, 2020). ‘A Snowflake’(국제갤러리, 2017) 등 전시와 프로젝트 기획. 『사물 유람』(현실문화, 2014), 『미술 글쓰기와 큐레이팅』(미디어버스, 2017), 『1:1 다이어그램』(워크룸, 2018)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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