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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터 무늬 있는 공간들을 기다리며

이선영

관객마다 취향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번듯한 화이트 큐브보다는 터 무늬가 살아있는 장소에 더 애정이 간다. 어디선가 만든 것을 툭 가져다 놓기보다는 주어진 장소와의 대화에 오랜 시간 골몰하며 그 장소가 아니었으면 빛날 수 없는 특화된 무엇인가 생성되었을 때 더욱 감동적이다. 한때 미술계의 무서운 아이들(Enfants terribles)로 등장했던 대안공간들에 그러한 장소 및 관련 기획이 많았다.



최성임, ‘missing home’전, 2013년 문래동 정다방프로젝트에서의 작품 설치 전경. 
각설탕으로 만든 집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아 사라진다.


점차 미술계의 제도가 정비되면서 그러한 야생적인 공간들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현장’이 사라져 가는 것과 맞물리는 듯하다.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호환성 있는 직무만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따박따박 월급 받는 삶을 마다하고 활동하는, 이름 앞에 ‘독립-’자가 들어가는 직함을 보면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과 인간은 구조적으로 연관된다. 전시장뿐 아니라 개방적이고 투명한 공간에 대한 나의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독재정권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아 옥살이했던 지식인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한여름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하는 한 방의 수인(囚人)들이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한 바있다. 미셀 푸코가 파놉티콘을 분석하면서 예시했듯이, 감옥의 모델은 일상에 편재한다. 개방적인 구조로 설계되곤 하는 근대적 스타일의 건축 또한 감옥의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열린 감옥이라는 것. 사방팔방으로 뚫려있으나(또는 그렇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 건물이 많다. 설계자는 똑같은 상황을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표현할 것이다. 그런 곳은 말하기보다는 보기, 머물기보다는 통과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말하기와 머물기는 소음과 정체의 증후로, 공간 설계자로서는 피해야 할 요소일 것이다. 보면서 통과하는 공간은 전형적인 전시성 공간이다. 그것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기능이기도 할 터이다. 이러한 공간은 그 자체가 플랫폼으로 인간이든 물질이든 빠른 순환을 요구하며, 전 과정은 육안으로든 기계를 통해서이든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장소는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입 뻥긋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적 사용자로 전제한다. 리처드 세넷의 『살과 돌』은 광장처럼 뻥 뚫린 공간이 혁명적인 대중 대신에 조용히 서로를 보는 잠잠해진 대중을 낳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타인에게 배려심 있는 사람은 소란스러운 사회적 행동이 허용된 시간과 공간을 철저히 의식한다. CCTV 같은 기계의 시선을 포함하여 소리 없는 시선이 교차하는 근대의 투명한 공간은 개인주의를 고무한다. 동시에 개인을 개인이게끔 하는 고유 세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방해한다.

이러한 투명한 사각 공간에서 서로를 다른 어항에 있는 물고기 같은 느낌으로 보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보는 사람 또한 다른 어항에 속해있으며 누군가의 주시 대상이 되고, 그 상황을 인식한다. 상호적 감시가 자기 조절 및 검열을 낳는다. 근대적 공간은 개인을 추상적 좌표로 구획한다. 전통 건축의 중심을 해체한 현대적 건축은 그 중성적 속성을 통해 개방적이며 민주적이라는 인상을 낳는다. 그러나 사회적 위기가 오면 투명한 중립성은 자신의 위계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먼저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지/없는지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다. 보이지 않는 빗자루가 사람들을 이리로 저리로 쓸어낸다.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은 국경조차 봉쇄하게 했다. 봉쇄에 따른 고통과 위험은 각기 다르게 다가온다. 대중의 쏠림과 분산을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서로 다름에서 비롯된 갈등과 해결책이 구조적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서로의 다름은 이제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수렴되고 있기에, 진정한 다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공격적이고 잔인한 결말을 낳는 게임이 되어간다. 너무 뻔하면서도 너무 도달하기 힘든 신기루 같은 것들이 ‘현실’, ‘객관성’ 등으로 행세하며 그 게임 규칙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강요되고 있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 역임. 제1회 정관김복진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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