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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우리는 왜 한국화에 주목하는가

박옥생

요즘 한국화에 관한 눈길을 끄는 전시들이 다양하게 기획되고 있다. 동양화라는 명칭으로 한국 근현대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된 한국화는, 한 세기가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현대 한국화’라는 미술사적 정리와 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온 것임을 깨닫게 한다. 한국화가 조선시대 회화사라는 범주에서 역사와 전통을 확립하고 계승하고 있다고 볼 때, 20세기 초엽은 일제 강점기를 통한 외부 미술양식의 유입과 변모, 그 안에서 전통의 견고한 계승과 독창적 회화 양식의 창출이라는 민감한 민족적 몸살을 앓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 분단의 경험과 급속한 경제성장은 동양화의 기법과 규범을 해체시키거나 그 의미의 서구적 변용이나 현대성으로 급격하게 탈바꿈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전통의 동양화 양식들이 서양화의 양식적 변용과 궤를 같이 하거나 독창적인 한국화의 영역이 새롭게 형성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러한 급격한 현대화에 관한 문제의 제시와 해결에 관한 첨예한 회화 운동들이 2000년대 이후 한국화의 새로운 바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화는 새로운 양식을 창출하고 정착시키고 있음은 간과할 수 없다. 물론, 한국화가 미술시장에서의 배척, 기획전시의 상대적인 기회 부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화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접근이 시도되고 또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2, 30대의 젊은 한국화 작가들은 종이와 먹이라는 재료적 물성의 특징을 살리되 현대적인 소재들을 자유롭게 운용하거나, 산수나 민화와 같은 전통의 주제들을 가져오되 서양화의 재료로 새롭게 재구성하기도 한다. 또한 전통 채색화의 기법을 연구하고, 계승하되 그 주제 면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작품들을 패러디 하거나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영역으로서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다양한 형태들은 더 이상 한국화라는 용어로 규정짓기 보다는 현대회화의 다양한 실험성 안에서 좀 더 앞서가거나 이색적인 기법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국화 작가들은 작금(昨今)에 부쩍 늘어난 갤러리나 미술관의 한국화 신진작가 공모나 기획전으로 새롭게 미술계에 입문함으로써 전시의 기회를 획득하고 있으며, 이러한 바람은 한국화 전공자들에게는 신선한 환기성과 희망을 제시한다 하겠다.


왜 한국화에 주목하는가

그렇다면 근자에 들어 우리는 왜 한국화를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가.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현대에 봉착한 문화적 현상에 있어 한국화 속에서 인간과 현대문명의 관계와 대안으로써의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화의 재료와 표현성은 인간의 안락, 평안과 같은 정서와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지는 물성(物性)에서 다른 매체에 비하여 따뜻하고 고요한 감성을 내재하고 있다. 또한 팽창과 수축이라는 이완작용을 통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근자의 화가들이 한지 재료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과학성과 감성에 감동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지의 감성은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따뜻함이나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특별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인데, 현대와 같은 고도의 물질문명과 건조한 도시문화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회귀되는 고향으로의 그리움이 한지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한지나 비단과 같은 전통 재료는 뛰어난 발색능력을 갖고 있어, 캔버스의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발색과는 다른 스며듦과 겹침의 은근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분채나 석채를 이용한 채색화들이 색의 신선한 변주를 연출한다는 경험적 인식과 보존성, 고운 색의 연출이라는 몇 가지의 장점은 한국채색화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전통 산수화에서의 부감법(俯瞰法)이나 삼원법(三遠法)은 다양한 시각적 변주를 연출 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미디어 아트가 갖는 다시점(多視點)의 조합 화면과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한 화면에 다양한 시점들을 조합하는 미디어 문화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에게는 시선처리로서의 이상적인 회화의 방법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근자의 작가들에게서 일고 있는 한국화의 이러한 새로운 바람은 한국화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국화의 정신적 치유와 풍부한 감성적 정서를 깨닫게 된 것에서 기인한 듯하다. 앞으로 한국화의 중요성과 화단의 자리매김은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라 본다. 한국화 화단을 이어 온 시간의 궤적만큼 두껍게 쌓여진 성과들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전시의 기획은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좋은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여 미래의 한국화 화단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성장시키는 것 또한 한국 미술계가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 박옥생(1977- ) 동국대 미술사학 석사. 월정사성보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한원미술관 학예연구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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