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54)나누는 기쁨, 나누는 미술

서성록

유난히 추웠던 작년 연말 필자는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전람회를 찾았다. 에프엔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 조촐한 전람회에는 참여 작가들과 방문객들이 이웃을 돕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작가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전람회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제작한 신작으로 관객을 맞아주었다. 물론 겉만 뻔드레한 이른바 ‘과시용 자선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람회를 주최한 ‘아트미션’은 자선전을 가져온 지 10년이 넘는다. 성금이 많게 모이든 적게 모이든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보육원 등을 지원해왔다. 이 모임에서는 일년에 한 차례씩 자선전을 갖기로 한 이후 계속 이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이것 말고도 시선을 주위로 돌려보면 훈훈한 일들을 목격할 수 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예술인 사랑나눔’에는 예술인, 화랑대표 61명이 참여해 자신의 작품과 애장품 180여 점을 기증하였다. 문화예술위원회는 행사의 수입금 전액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을 지원하고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돕는 예술교육프로그램에 쓸 예정이라고 한다. 이 행사는 단순한 자선전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와도 같은 ‘자선문화’를 성장시키고 예술을 즐기는 풍토를 조성하는데도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사람들이 이처럼 나눔의 행사에 동참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표시에 다름 아니다.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또 다른 에피소드는 51명의 작가들이 신설된 민간교도소에 작품을 기증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는, 게다가 그것도 흉흉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위해 선뜻 50호나 100호의 대작을 내놓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아트쉐어’전에는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하여 54명의 작가들이 뜻을 같이했다. 이 전시는 보여주는 것을 넘어 판매수익금을 나눔실현에 쓰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이처럼 예술을 매개로 이웃과 정을 나누고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는 행사가 잇따라 펼쳐졌다.


나눔문화 정착에 솔선수범

앞에 소개한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한 주인공들이라면, 평생 모은 컬렉션을 희사하여 산소같은 역할을 한 인사들도 있다.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대표는 2002년부터 국내외의 주요 작가의 작품 239점을 경남도립미술관에 기증해왔다. 그는 부산시립미술관, 부산시립박물관, 밀양시립박물관, 전혁림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에 8백여 점을 기증해 나눔문화의 정착에 솔선수범을 해왔다. 그런가 하면 교포사업가인 하정웅씨는 우리나라 미술품 기증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1993년 광주시립미술관과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미술품 기증에 앞서왔는데 지금까지 기증한 작품이 모두 2,222점에 이른다고 한다. 광주만 아니라 조선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에도 많은 미술작품을 기증하여 취약하기만 한 지역미술관을 성장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어떤 재력가들에게는 미술품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비책(秘策)’으로 악용될 수도 있겠지만 이 분들에게는 여러 사람들이 공유해야할 ‘공공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냥한 자비는 고귀함의 진정한 계급장”(셰익스피어)이라는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나눔이 일상화될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따듯해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언덕 위의 들풀이 자신이 필요한 햇빛만 받고 나머지는 다른 들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듯이 우리가 지닌 것을 이웃들과 나누면 어떨까.


타인의 선행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건강해지는 것을 ‘테레사 효과(Theresa Effects)’라고 부른다. 테레사 수녀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 했으며 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하버드대 데이빗 맥클랜드(David McClelland)교수에 의하면,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자신을 바친 테레사 수녀에 관한 책을 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면역물질이 대폭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나눔의 실천은 사람의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나눔의 문화가 들불처럼 번져나갔으면 한다. 나누는 행위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나누지 않는 것이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바란다.



서성록(1957- ) 홍익대 미학 석사. 월간미술 미술평론부문 대상(2001)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위원 역임. 현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