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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이상한 미술품 가격 확인

박영택

집 근처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한쪽에서 열리는 전시를 봤다. 이른바 이발소 그림들을 판매하는 곳이려니 했다. 이제는 길거리나 터미널, 혹은 역사(驛舍)가 아닌 백화점에서도 상화를 판매하나? 그럴듯하게 차린 안내데스크, 정장 차림의 여직원과 액틀에 담긴 그림들이 조명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작품들 대부분은 형편없었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좋은 작품만이 시장에서 팔려야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이란 기준도 딱히 있는 것도 아니며 아울러 “당신이 좋다고 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기호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작품의 질에 대한 판단, 안목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하는 것이 평론이라고, 평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사실 시장도, 작가도, 컬렉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질에 대한 엄격한 기준, 논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안목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곳이 미술계여야 한다. 상당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시장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미술시장이란 것도 여러 층위가 존재할 것이고 아울러 그에 따른 컬렉터의 취향과 안목도 그만큼 제각각이니 그에 맞는 시장/작품가격도 그만큼 다양하게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최소한 사기는 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작품이 대단한 것처럼 포장되거나 거짓으로 평가하거나 아닌 것을 비싼 가격에 팔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저 그 작품의 수준에 맞게 대우하고 그에 적당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미술시장이 작품의 질과는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안목 없는 컬렉터의 취향에 마냥 휘청거리거나 화랑의 전략적인 작전에 속수무책인가하면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유명세나 명망성에 넘어간다. 눈이 없으니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상한 사기도 한 몫 거든다. 바로 앞서 거론한 백화점 전시의 경우가 그렇다. 벽면에는 전시된 작품들을 판매하지만 이것들을 임대해서 수익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선전 문구가 붙어 있다.
“연 8% 기대 수익으로 건물주보다 높은 임대수익을 가져가자! 작품을 구매한 후 다시 미술품이 필요한 곳에 임대를 해주고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신개념 미술품 재테크입니다.” 작품을 구입하면 연 8%나 되는 임대수입도 보장 한다는 얘기다. 가능한 일일까? 그러한 수익률은 아마도 작품가격과 연동되어서 산정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작품 가격의 공신력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미술품 가격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갤러리○는 한국미술협회(이하 미협)에서 엄격하게 심사하여 판정한 가격으로 미술품을 판매합니다.” 미협이 가격을 결정하고 그곳에서 호당 가격 확인서를 발행해준다는 것이다. 덧붙여 “미협의 주요 사업 중의 하나가 작가들의 작품의 가치를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평가하여 호당 가격 확인서를 발행하여 주고 있습니다.” 라고 쓰였다. 그러면서 “갤러리○가 제안하여 드리는 미술품 가격은 믿을 수 있으며, 판매한 모든 작품에는 한국미술협회가 인증하는 호당 가격 확인서를 함께 드립니다. 갤러리○는 제휴한 작가들의 작품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전시회 활동과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제휴한 작가들의 작품 가격들이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도 적고 있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호당 가격은 캔버스 크기에 비례해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구습이 된 작품가격 산출법이다. 호당 가격 확인서는 발급된 시기의 판매자가 희망하는 호당 가격이 작성된 문서일 뿐, 실제 거래에선 매매자 협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 경매로 따지면 낙찰가가 아니라 최저 입찰가인 것이다. 작성자에 의해 부풀려져도 확인할 수 없는 이러한 호당 가격 확인서가 마치 공신력 있는 작품 감정가처럼 이용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이런 오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투자의 실패리스크는 전적으로 투자자가 떠안게 된다. 미술품 구입은 당사자의 책임이며, 자기 안목의 결과다. 그러니 고도의 안목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안목이 없으니 저런 사기성 문구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형편없는 그림들을 사들인다.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만 잔뜩 쌓여있는 자신의 공간을 뒤늦게 절감할 것이다. 그것을 컬렉터라고, 수집문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 박영택 현재 경기대학교 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 <민화의 맛> 등 20여 권 및 6권의 공저가있다. 60여 회의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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