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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비대면 강의에 대한 단상과 ‘마당의 회화’

김보라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여러 미술대학의 시간강사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종종 왜 강의를 계속하고 있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강의가 체질이어서’가 답은 아니었다. 이유를 찾자면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강의는 공부가 되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친다기보다는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체감하고 있다고 할까. 학생들은 나와 배움의 길을 함께 걷는 벗이라 느낀다. 또 한가지 의미를 찾자면 그것은 ‘만남’이다. 수업이라는 형식을 통해 함께 질문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맺는 인연이 소중하다. 요셉 보이스처럼 나 역시 강의를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여기는 면이 있는데, 현장에서 같이 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 진행 모니터 화면


그런데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업을 이어가면서 내 직업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때때로 깊은 회의감에 사로잡힌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물론 시간을 들여 이동하지 않아도 온라인 접속만 하면 강의를 시작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처음에 그렇게 낯설고 힘들었던 비대면 소통 방식에 어느새 익숙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즐기기는 어려운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 참여를 강조하고 자주 말을 건네는 편이나, 강의실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몇 배는 힘이 든다.

연일 이어지는 강의로 주말이면 녹초가 되곤 하는 나는 10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그래도 곧 끝나버릴 전시를 놓칠 수는 없다는 마음에 한 전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본래 보고자 했던 전시는 정작 별 감응이 없었고, 우연히 들른 근처 갤러리에서 소중한 시간을 경험했다. 알렉스 카츠의 생명력 넘치는 붓터치와 자코메티의 힘있는 선을 보며 기운을 얻었던 것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했을 때 에너지를 받는 것과 비슷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가의 숨결과 에너지가 응축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 순간, 시인 장석남의 글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감수성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의 시를 애독하던 독자로서 근간을 챙겨 읽은 터, 거기에서 읽은 문장이었다. “동그라미는 컴퍼스로 그린 것보다 손으로 그린 것이 아름답다. 왜 그런가? 거기엔 호흡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호흡이 생명이다. 생명이 느껴져야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아름다운 것이다”(장석남,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마음의숲, 2021, 93쪽).



좌) 이강소 작가 강연 포스터 이미지 
우) 이강소 작가 강연 장면 제공: 태성문화재단


현재 내가 입주해있는 H ART LAB에서 얼마 전 이강소 작가의 강연이 열렸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마당의 회화’라고 설명했다. 그의 비유를 되새기며 마당이라는 장소가 가진 전통적 의미를 생각해본다. 마당은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열린 공간으로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여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이었으며 휴식을 제공했던 곳이었다. 작품을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라고 밝힌 이강소 작가는 비어있음의 중요성과 예술가가 작품에 담은 에너지가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에너지, 보이지 않는 기운이 모니터 화면을 통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 세계로 이동하는 만큼 예술작품을 직접 마주할 때 전해지는 생명력, 인간의 호흡과 움직임이 전달하는 아름다움에 더더욱 매력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NFT아트가 회자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디지털 문화의 편의성을 누리는 한 사람임에도,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대면할 날을 여전히 고대하고 있다.


- 도원 김보라(1972- )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학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 및 박사. 현재 H ART LAB 입주이론가, 홍익대학교 회화과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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