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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소설의 서사구조를 차용한 공간큐레이팅: 국립민속박물관<역병,일상>특별전

최미옥

전시는 전시품과 관람객이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한편의 드라마이며 전시디자인은 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진품의 전시를 통해 관람자들에게 유일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뮤지엄 전시의 역할이고 목적이라면, 전시를 구현하는 디자이너는 기획의도와 메시지 그리고 전시품의 세세한 이력파악을 통해 의미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감동과 감성의 장을 창조해야 한다. 

앞서 전시에 대한 정의를 ‘전시품과 관람객이 소통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기술해 보았지만, 늘 내가 하고 있는 작업-전시를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 등장한 16세기 이래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온 뮤지엄 정체성에 따라 새로운 전시에 맞는 디자인 방법론도 지속적인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시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노르베르트 볼츠의 표현을 빌리면 ‘감각적 체험의 상징적 통일체’이고, 미디어 이론가 윌터 잭슨 옹의 표현을 빌리면 ‘기대된 피드백’인 것 같다. 또 필자가 학부에서 전공한 언어학 학자 페르디난드 소쉬르 이론에 빗대어 보면 ‘랑그와 파롤의 구조’다. 오늘날 전시는 주제면으로나 연출면에서 더 통섭적이고 과감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뮤지엄 전시에서 디자인의 역할도 더 미분화되고 확장되어져야 한다. 하나하나가 사유와 은유의 집적체인 작품들을 담는 용기容器로서 아트 뮤지엄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과 정보를 담는 역사계 뮤지엄도 예외는 아니겠다. 그래서 전시를 공간화하는 작업을 나는 ‘공간큐레이팅’이라는 용어로 명명한다. ‘큐레이팅’이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을 말하는 큐레이션(Curation)에 큐레이터의 활동을 포함하여 정보를 수집, 종합하고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내해주는 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라면, 거기에 구현적 대상으로서 장소이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체계이기도 한 ‘공간’이라는 단어를 조합한 ‘공간큐레이팅’은 공간 자체가 의미를 함의하고 경험의 가치를 갖도록 하는 뮤지엄 디자이너의 작업 또는 활동을 지칭한다. ‘공간큐레이팅’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작업은 전시 공간 자체를 커뮤니케이션 체계이자 모델로서 완성시키는 보다 진일보된 디자인 활동이며, 뮤지엄의 보여주기 방식이 된다. 



홍보물의 얼굴이미지와 코르텐강 구조월로 구성된 ‘역병, 일상’ 특별전 도입부 전경. 사진: 홍기웅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코로나팬데믹을 현재시제로 마주하며 위안과 성찰을 위한 전시를 기획했다. 제목은 <역병,일상>이다. 역병의 시대 속 우리를 바라보는 전시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유사한 주제의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민속’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병과 역병의 전시는 어떠해야할까에서 부터 전시를 만드는 일이 시작됐다. 

“역사 전시는 역사의 빈틈을 메꾸고 뛰어 넘는 상상의 산책이다...발견 할 수 있는 것, 발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에 실체와 감정을 부여하고 전시를 현재시제의 담론으로 마주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밝히는 것이다.” 1)

<역병,일상> 특별전은 우리 역사 속 역병의 기록 조명에서부터 시작해, 질병의 회복과 치료를 위한 민간의 노력을 민속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현재 시제인 코로나19팬데믹의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전염병 속 우리 일상을 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다시 연대로 나아가는 ‘함께’의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기획된 전시다. 이 전시의 공간은 기획전시실이라는 거대한 큐브 안에 3개의 부를 각각 상징하는 작은 큐브들을 담고 있는 구조다. 민간신앙에서 역귀를 퇴치하는 색으로 믿었던 붉은색은 홍보물에서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시의 시각 정체성을 응집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전시공간의 영감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Benim Adım Kırmızı)”의 서사구조에서 비롯됐다. ‘나는 00입니다’로 시작하는 챕터의 내용처럼, 각각 ‘발병(1부)’, ‘치료와 치유(2부)’, ‘일상과 함께의 가치 회복(3부)’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전시콘텐츠는 벽, 시각물, 재료의 물성과 더불어 구조의 중첩과 교차가 만드는 드라마틱한 공간감이라는 건축언어로 치환 되, 각 큐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표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시선과 동선에 의해 연결되고 합쳐진 전체 전시공간은 전시시나리오가 제시하는 일련의 공간 서사를 이룬다. 이 공간 서사를 통해 ‘관람’이라는 행위가 수동적 정보의 확인만이 아닌, 상상하고 사유하며 또 감동하고 공감하는 능동적 경험이 되기를 의도하였다.



치료 치유를 은유한 비계구조물과 민속전시물이 조우한 ‘역병, 일상’ 특별전 전시실 전경. 사진: 홍기웅


각 부의 주제와 디자인 구현을 들여다보면, 
1부 역병+일상: ‘나는 <발병>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존재했던 병에 대한 기록들이 거대하고 방대한 텍스트로 큐브를 가득 채운다. 이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병의 열람과 기록이 아닌 그들과 마주하며 더러는 공존하며 지내온 사람들의 기억과 태도에 대한 큰 발견이고 공감이다. 폐거푸집과 코르텐강(부식 철판)은 건축언어로 치환된 ‘발병’의 소재적 은유기 되었다. 

2부 역병-일상: ‘나는 <치료와 치유>입니다’ 
민간신앙과 전통의학 그리고 근현대 전염병 퇴치와 예방의 기록이라는 콘텐츠는 비계에 의해 지지되고 자리잡은 쟁반같은 원반형 전시대에 담긴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할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비계구조는 병의 치유와 치료를 통해 몸을 새로 세우는 행위에 대한 은유가 된다. 이를 담고 있는 거대한 블랙박스의 큐브는 치료와 치유에 대한 기억과 기록의 저장고인 셈이다. 

3부 역병±일상: ‘나는 <일상과 함께의 가치 회복>입니다’ 
거리두기와 언택트가 현재시제가 되었지만 우리는 더 연결되어야 하고 투명해야 함을 폴리카보네이트와 거울이라는 소재가 대변한다. 3부의 입구에서 만들어지는 ‘길’이자 ‘문’인 진입 구조물 안에는 사람들의 단편적이고 파편적 경험들이 담겨 있다. 이들이 평범하고 작지만 변화와 상생을 만드는 새로운 시간과 가능성을 여는 통로며 출구임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큐브의 사이 공간은 영상존이면서 ‘완충’과 ‘매개’의 영역으로써 전시가 던지는 ‘연대와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주제존이 되도록 디자인되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전체 공간의 동선은 뫼비우스띠처럼 ∞형태로 이어지고 연결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역병이란 지속해서 그 이름과 형태를 달리하며 나타나 우리를 위협하고 괴롭히고 또 사라졌다. 그 안에서 인류는 묵묵히 주어진 삶을 이어왔음을 공간으로 은유하면서 이 전시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 속 우리에게 위안과 희망의 용기(勇氣, 容器)가 되고자 했다. 

소설의 서사구조가 이렇듯 전혀 다른 콘텐츠이지만 공간으로 살아났다. 파묵 오르한이 ‘순수박물관’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몇 년 후 동명의 뮤지엄을 이스탄불에 개관해 문학의 확장성을 증명했다면, 이 전시는 문학에서 인간 사유 구조가 전시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신기하게도 현재 파묵 오르한 작가가 발표 준비 중인 신작소설이 ‘역병’을 주제로 한다고 한다. 전시 개관 무렵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그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어야만 했다는 우연이지만 필연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 있어서 어떻게든 그 연결에 대한 책임과 지분이 있다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의 문구가 떠오른다. 소설가로부터 받은 영감과 감동이 전시로 이어졌으니 이것이 또 관람객에게로 이어져 어려운 시기에 위안과 힐링이 되기를 바래본다.




- 최미옥(1974- ) 언어학 학사, 공간디자인·건축학 박사. ‘밥상지교’ 특별전(2015) 등 다수의 해외 디자인 어워드 수상. 전시디자인학회 부회장, 문화공간건축학회 이사 역임. 건국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ICOM 건축 및 뮤지엄 기술분과 회원(ICAMT), ‘신디의 박물관여행’ 블로그 운영. 『뮤지엄x여행』(2019, 아트북스)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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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재연, 디지털 스토리텔링기반 전쟁 서사 전시, 몰입에서 담론으로: 파리해방박물관 전시콘텐츠 분석, EU연구 제 59호, 2021,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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