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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작가를 후원하는 길

박영택

작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작업실을 제공하거나 전시를 마련하는 등의 일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시가 열리는 화랑을 통해서 혹은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 최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해 구입하는 것이 진정한 컬렉터, 미술애호가의 우선적인 일이다. 전시를 자주 보고 미술사 공부를 해서 날카롭고 신중한 안목과 감각을 기르면서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눈을 갖는 일이 우선이며 이후 이를 통해 작가/작품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수집 구상 아래 찾아 나가는 일이 컬렉터, 미술애호가가 되는 일이다. 컬렉터의 길이나 미술애호가가 되는 길도 이처럼 공부가 필요하고 계획이 요구된다. 무림의 고수는 많다. 당연히 어느 작가가 뛰어난 작가이고 가능성이 있으며 매혹적인 작업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런 작가를 섬세하고 예민하며 날카롭게 바라보는 비평가, 전문가는 또 누구인지 알아야 좋은 컬렉터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좋은 작품을 소장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컬렉터 문화는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되고 작가가 작품활동을 적극 개진해나가는 동력을 얻게 된다. 좋은 컬렉터가 뛰어난 작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컬렉터 혹은 후원자라고 하는 이들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겉돈다. 우선 컬렉터들이 좋은 미술작품을 구입하기보다는 오로지 유명 작가 내지 투자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에게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안목이나 장기적인 계획은 부재해 보인다. 따라서 특정 작가만 지속해서 팔리고 요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가 하면 작가를 후원한다고 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특정 작가를 후원하는 건 사적이고 자의적인 일이라 문제는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안목, 취향으로 결정된다. 자신이 특정 작가, 작품을 좋아서 후원하는 일이니 탓할 게 없다. 다만 여기서 후원자라는 이가 작가와 자주, 직접 접촉하면서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무시되거나 자신의 자본의 힘을 이용해 작가를 무시하는 한편 작품 구입을 명목으로 식사나 술자리, 혹은 다른 요구를 하는 데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있는 자의 갑질이 작동할 수 있는 여러 공간이 발생한다. 이런 졸부의식을 지닌 컬렉터가 적지는 않은 것 같다. 컬렉터나 후원자는 작가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에 주목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선명하고 깔끔하게 구입하면 된다. 그것이 작가를 진정으로 돕는 일이 된다. ‘한국○○재단’이라는 곳이 있단다. 대다수 젊은 작가들의 비참한 삶을 접하고 ‘살기 힘든 작가’를 후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중요하니 대중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어려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재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약 20여 명의 회원이 1,00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 이상에 이르는 돈을 조건 없이 출연하여 작가 후원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연한 회원은 후원작가의 작품을 살 때 10%의 할인을 받는 게 혜택의 전부라고 한다. 이 재단은 후원할 작가를 자체 엄선해서 개인전을 마련해주고 작품 구입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작품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 현장심사·공개심사의 과정을 거쳐 선정 작가에게 개인전 비용 일체를 지원하고 작품 창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지원하기 위해 여행 경비 등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지난 8년 동안 약 40여 명을 후원했다니 매우 이상적인 내용 같다. 그러나 다소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우선 어떤 기준으로 작가를 선별하는 가이다. 형편이 어려운 작가를 돕는 일은 후원자가 하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누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며 지속해서 버티는가이다. 그 외 요소는 후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여러 문화재단이나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작가지원프로그램은 결코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재단에서 후원하는 작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전문가가 심사하는지 또한 진정으로 작품성이 있는 작가를 선별하며 그 작가의 작품성에 대한 미술계의 평가는 어떤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후원을 자처하는 단체는 자칫하면 미술계에서 권력적인 측면을 노정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쉽게 말해 지원금을 준다는 것으로 인해 상대적 약자인 작가가 취약한 구조에 놓이며 비굴해질 수 있다. 미술에 관한 관심과 후원은 그 사회구성원이 지적·정신적 가치를 고양시키고 새로운 창의성과 상상력을 통해 한 사회를 새로운 세계로 밀고 나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지 가난한 작가를 시혜한다는 차원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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