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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예술을 만나는 것에 대하여

윤동희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이태원+한남동’을 테마로 한 책을 펴냈다. 『이태원 주민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요즘 가장 핫(hot)하기로 소문난 이 동네의 ‘명소’를 소개한 책이 아니다. 리움을 시작으로 꼼데가르송·버진·꿀·옥사나 가든·테이크아웃 드로잉·더 스파이스 등의 ‘핫 스팟(Hot spot)’으로 옛것과 새것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이 동네를 다룬 종이뭉치들은 그동안 물리도록 보아왔으니 구태여 나까지 만들 필요는 없을 터. 내가 이 책을 펴내게 된 건 이태원에서 ‘섬’처럼 살아가는 9명의 아티스트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섬과 섬 사이의 ‘연대’를 꿈꾸었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업이 대단히 거창하다거나 유난히 특별한 건 아니다. 


이태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재개발로 사라질 자신의 집에서 주민들의 초상화를 찍어주고, ‘움직이는 식당’을 만들어 신청자의 집으로 찾아가 요리를 만들고, 이태원에 버려진 것들을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켜 다른 동네로 보내고, 이태원의 작은 식물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퇴근길 기자’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사소한 작가들의 소소한 작업이 책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태원의 무명 아티스트들은 ‘커뮤니티(Community)’라는 자신들만의 ‘플랫폼(Platform)’을 자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고급 부촌과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 뒤섞여 있는 곳, 족히 30-40년 이상을 한 곳에 머무른 토박이들로 그득한 곳, 보수적인 예술과 진보적인 예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 이들은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공동체 삼아 서로에게 인간적이며 환경적이 되기를 소망하며 근사한 조감도(鳥瞰圖)를 그려냈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정치철학자)의 고민을 조금 변주하자면 “아티스트 각자가 문자 그대로 예술을 살아낸” 셈이다.



예술을 살아낸다는 것, 예술을 자신의 삶으로 만든다는 것. 알다시피 ‘다중’과 ‘자율’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세상과 예술을 바라본 네그리의 생각은 ‘예술=대중’이라는 의미를 곰삭히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오로지 ‘교환가치’로 바라보는 작금에 ‘살아 있는 노동’ 혹은 ‘살아 있는 예술’의 가치를 역설한 그의 생각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 이 때문이다. 비록 ‘일시적인 자율지대’에 그칠지도 모르지만, 이태원 아티스트들의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인 작업에서는 즐거움이 물씬 느껴졌다. 동시에 작은 용기가 숨어 있었다. 거창한 각오로 삶과 예술을 재단하겠다고 벼르는 프로페셔널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타협해온 전통적 형태의 미술‘계(界)’에 흠집을 내는 방법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고급예술과 전위예술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 자율과 개인적인 실현, 그리고 참여라는 이름으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생활)예술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참 힘든 세상이다. 그건 미술계도 마찬가지여서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재빨리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르게 작업해야 할 것만 같다. 영혼을 말하면서 현실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막지 못해 마치 고액을 들여 족집게 과외를 하는 학생처럼 자신을 인도해줄 점쟁이를 찾아 기웃거리는 예술가들도 왕왕 보인다. 이 슬픈 현실 앞에서 나는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고 입술을 깨물었던 소설가 김훈의 육필처럼 다시는 투정하지 말자고 야박하게 말하려 한다. ‘나는 작가다’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자고, 그렇기에 ‘섬’처럼 고독하게 살아보자고, 가끔은 자신의 곁에 둥둥 떠 있는 다른 섬과의 ‘연대’를 꾀해보자고, 그리하여 섬과 섬이 모여 하나의 ‘군도(群島, Archipelago)’를 이루는 ‘커뮤니티’ 속에서 스스로 담론을 생산해보자고 청하려 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세상에서 가장 자율적으로 살아가야 할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자유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창조’라는 저항으로 얻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밑줄을 그으며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벚꽃이 명멸하는 4월이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예술을 만나는 법’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동희(1972- ) 연세대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월간미술 기자, 아트인컬쳐 객원 편집위원 역임. 현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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