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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미술평론가의 존재와 애도

박영택

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최인훈 전집』을 접했다. 『광장』과 『구운몽』을 비롯해 여러 소설과 희곡을 읽었는데 당시 그것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그가 상당히 중요한 문학가며 특히 『광장』이란 소설이 차지하는 위상의 중요성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 1, 2권이 출간되었고 그 시와 산문집은 너무 흥미로워 반복해서 읽었다. 이 두 문학가는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故 방근택선생 영결식장에서, 1992, 10×15cm, 김인환, 유준상, 이구열, 이일, 김복영.
서성록 제공. 출처: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10주년 기념전 도록, 2018


문학책과 함께 미술 관련 책을 읽다가 미술평론가의 평문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 시기는 그로부터 한참을 지나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한국 미술평론가의 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마구잡이로 읽었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미술 관련 도서를 추천받은 적도 없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교수들도 거의 없었던 시절이다. 미술대학도 아니고 더군다나 미학과나 미술사학과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로서는 미술을 하고자 했고 그러니 미술에 관해 알고 싶고 알아야 했기에 미술책을 읽는 일은 불가피했다고 생각해서 그저 ‘미술’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라면 무조건 찾아서 읽고자 했다. 당시 『계간미술』과 『뿌리 깊은 나무』 등의 잡지에 실린 미술 평문은 그런 면에서 매우 요긴한 글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러 평론가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의 필자는 김윤수(1936-2018), 최민(1944-2018), 성완경(1944-2022), 박용숙(1935-2018), 이일(1932-97), 그리고 홍가이(1948- ) 등이었다. 그들의 글이 학부와 대학원 시절의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의 그 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를 앞서 살아간 이들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가능한 존재들이다. 나는 그들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못한다. 아니 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김윤수, 최민, 박용숙, 유준상(1932-2018), 성완경 선생 등이 돌아가셨다. 한국미술평론계의 중요한 분들이자 좋은 글을 남기신 이들이다. 나는 그들의 글을 탐독하면서 성장했고 그 글의 영향을 받아 부족하나마 미술계 말단에서 미술평론가 행색을 하고 있다. 그저 소소하고 남루한 잡문이나 쓰는 형편에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글이 어떤 것인지, 누가 좋은 글을 쓰는지 정도는 최소한 분별할 줄 알려고 노력은 하려 하고 있다. 또한, 그렇지 못하는 나의 능력을 탓하고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한 욕망에 부침하지 말고 그저 자기 분수에 맞는 글을 욕심 없이 쓰려고 스스로 다독이는 편이다. 모두 앞서 거론한 평론가들의 글 덕분이다.

우리 미술계는 수많은 작가와 컬렉터, 화상, 미술평론가와 미술사가, 그리고 미술기자와 미술출판업자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매개자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미술계를 풍요롭게, 질적으로 탄탄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계가 기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뿐이다. 작가만을 중시되고 조명되며 평가받는 편이다. 지나친 작가 편중이다. 얼마 전 성완경 선생이 코로나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뒤늦게 접했다. 『서울아트가이드』의 달진뉴스 부고 난에 차갑게 문자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 턱없는 부음의 고지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뛰어난 미술평론가의 죽음이 이렇게 한 줄로만 마감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미술계가 미술평론가들의 좋은 글을 통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평론가의 존재는 훌륭한 작가와 비교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평론가에 대한 우리 미술계의 박한 대우와 인정은 너무 경박하고 메마르다. 그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기억, 평가와 인정은 거의 부재하다. 우리는 그저 시장과 자본만이 존재하는, 따라서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독특한 문체를 지닌 평문에 대한 깊이 있는 읽기 같은 것은 마냥 희박해지는 그런 시대를 무심하고 격렬하게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 박영택 현재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 민화의 맛』 등 20여 권 및 6권의 공저가 있다. 60여회의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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