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4)활황의 미술 속 자기복제 열풍

오정은

“(...)최근 원로 작가들의 야심 찬 근작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80이 넘는 나이까지 지속적으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대단하지만 엄청난 양의 작업량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오랜 작업들을 부단히 자기 복제하고 있으며 시장의 요구에 순응해 마치 찍어내듯이 반복해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가격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한결같이 거대한 화면을 영혼 없이, 공허하게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영택, 「원로작가들의 너무 큰 전시, 공허한 전시」
『서울아트가이드』 2022.7. p.36


『서울아트가이드』 연재칼럼 ‘지금, 한국미술의 현장’에 게재된 박영택의 글 「원로작가들의 너무 큰 전시, 공허한 전시」에는 과거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가 미술시장을 의식해 자기 복제의 화면 생산을 기계적으로 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 어린 문장이 담겨있다. 어느 작가의 실명까지 거론되었으니 용기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스테디셀러로 등극해 완판 행렬을 계속하는 작업을 작가 본인이 계속하고 소비자가 반기는데 그 풍경이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수년 전 불었던 단색화 ‘열풍’ 이후, 원로작가의 구작 같은 신작이 시장에 계속 재현되고 있음은 금방이라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니던가.



The Armory Show ⓒ Wikimedia Commons, 2021


그런데 이제 갓 주목을 받은 MZ세대 작가군에서도 자기 복제의 경향이 인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무게를 추가해 살펴볼 일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스타작가 반열에 든 젊은 작가의 수가 적지 않다. 이들 중 일부는 잦은 아트페어의 개최와 더불어 각종 공모전에서의 치열한 이력 경쟁 때문인지 전시에 참여하는 빈도 주기가 매우 짧은 편이다. 전작과 근작의 제작과 발표 간격이 짧고 다작을 해서 활동이 왕성한 것 같지만, 깊이감이 아쉽고, 작품 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로서의 자생성과 단일 주제에 천착하는 집요함을 구하는 일환으로 어느 정도의 동어반복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되지만, 문제는 시장에서의 안정성을 일찍 확보한 작가가 초기 작업의 언어에 쉽게 안주한다는 것이고 작가의 생애주기 측면으로 볼 때도 층위의 너른 확장 없이 하나로 나열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등단 문학가가 신간의 출판이나 판형의 확장 없이 2쇄, 3쇄, 4쇄… 찍기만 계속하고 출판계 역시 작가의 실험성보다 시장성에만 투자한다면 당대를 감식해 번역하고 호흡하는 문장이 어떻게 발굴될 수 있을까. 질문의 범위는 미술계에도 물론 다르지 않다.

작가가 미술 시장의 유혹을 스스로 경계하고 독자적 예술관을 고수하는 태도가 필요한 만큼, 그들 주위에서 작업을 조력하고 조언하는 이들의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겠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업의 크리틱을 통해 안목과 식견을 나누고 작가의 작품 완결에 이르기까지 동행한다기보다, 전시가 임박해 섭외되어 서문을 쓰기 위한 간략 인터뷰를 나눈 뒤 원고를 마감하는 식의 요즘 관행은 문제를 미궁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한다. 지원사업에서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하고 평가해 작업의 가능성과 전망을 본 전문가를 두고 막상 심의 결과 발표 이후에는 선정자인 작가와의 유착관계 의심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사업에 관여할 수 없게 하는 기관의 방식도 전문가의 전문성을 오로지 행정상의 기능적 평가자 역할로 제한하고 예술계를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면서도 창작 환경 내부에서의 지속적이고 수평적인 동료 집단 네트워크 체계를 만드는 데는 무관심한 제도의 일률적 사업 설계도 마찬가지다. 이러는 동안 자본이 종용하는 ‘복제’의 서슬 푸름이 ‘열풍’의 미명으로 둔갑해 은연중 증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MZ세대 열풍’의 수식어가 호가하는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움이 그립다.




- 오정은(1986-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 전문사 수료. 제5회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 수상. 2022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시각예술 분야 심의. 『디자인 프레스』, 『투데이신문』, 『문화정책리뷰』 등 기고.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