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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미술비평가의 스탠스

박영택

눈에 보이는 그 무엇, 특히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글로 쓰는 일에 종사한 지가 거의 30여 년이 되어가도록 전혀 개선되지 않는 글의 질과 속도, 내용의 깊이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심지어 비참하게 만들지만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여전히 그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짓을 내 스스로 멈추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좀 더 쓰다 보면 종국에는 조금은 좋아지겠지 하는 턱없는 욕망이 나를 질질 끌고 간다는 점이다. 정신과 몸을 모두 괴롭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고약하지만 견딜만한 글쓰기의 변태적인 노동이 버티고 있다.

두 번째는 글쓰기를 통해 비루한 원고료를 번다는 점이다. 그 원고료로 삶을 도모하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완상하고 싶은 골동품 등을 산다. 이런 것을 위해 ‘매문(賣文)'의 노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글을 통해 내가 본 것, 느낀 것, 옹호하고 싶은 것, 부정하고 싶고 경멸하고 싶은 것을 절박하게 알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나만의 편견이자 개인적인 견해이다. 이게 지나치면 독선이고 너무 날카로우면 타인에게 아픈 상처를 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평론가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안목과 소신으로 미술계에 대해 발언하는 것, 자신이 뜨겁게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치밀하게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평이어야 한다. 동시에 엉터리와 가짜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왜 코스튬 플레이에 그치는지,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어떻게 내세우는지, 어떤 ‘구라’를 치는지, 작품 자체에서는 무슨 에러를 발생시키고 있는지도 조목조목 들춰내야 한다고 본다. 작품이 부족하다면, 아쉽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작품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고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비평가의 여러 스탠스가 불거져 나온다.



성능경, 위치, 각 47×26cm, 1976 ⓒ artist


우선 미술 생태계 내에서 삶을 도모하기 위한 생존으로서, 돈이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생존형 비평가의 입장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런 여러 일을 수주(受注)하는데 있어서 결코 부딪치거나 파열음을 내서는 안된다는 자체 검열이 작동된다. 일과 관계된 작가나 화랑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그들의 작품이나 전시, 사업, 행사 등에 도움이 되고 옹호되는 글이 생산되어야 한다. 여기서 평론가의 포지션은 꽤 심오하고 그럴듯한 담론을 생산해주는, 이론적인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역할이고 화랑이나 작가로부터 노골적으로 요구받기도 한다. 하여간 이런 일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하면서 스탠스를 잡은 평론가에게 서문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오고 화랑과 관련된 여러 일도 엮이게 되며 자문이라든가 심사도 하게 되고 지자체의 미술행사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곳에서 열리는 지역미술제나 비엔날레 행사도 맡게 되는 식이다.

이것 역시 능력이고 삶의 방편이며 중요한 처세술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쓰는 글의 내용에 어떤 질적 가치가 있겠는가. 그럴듯한 문장을 이어가며 심오하고 철학적인 듯해 보이면 된다. 그런 분위기만 짙게 뿜어주면 된다. 그런데 정작 다른 칼럼 등에는 상당히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것처럼 포즈를 취하면서 기존의 자기 행위와는 정반대의 포지션을 유지하며 자기부정을 한다. 한편에서는 철저하게 이해관계를 위한 글쓰기에 달라붙어 있으면서 작가론과 무관한 시론 등에서는 엄청나게 비판적인척하는 글을 생산해 내는 양면성의 포지셔닝이 오늘날 상당수 비평가의 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 또한 여기서 그렇게 멀리 벗어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이곳에서 비평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스탠스를 과연 어떻게 잡아야 하느냐는 물음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최소한 이중적으로 분열된 글쓰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가능한 한 보는 것과 쓰는 것, 살아 내는 것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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