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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타당한가? | 김성호의 미술계 팩션(13)

김성호

한 지역의 원로작가 최버럭은 분하다
그가 고향인 A시(市)에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매입한 미술관 건립 부지와 함께 자신의 주요 작품들을 A시에 기부하면서 자기 이름을 딴 ‘시립미술관 건립에 관한 협약’을 완료했지만, 그 추진 일정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시립미술관을 건립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무슨 ‘타당성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는데, 최종 단계에서 ‘부적정’ 평가를 받은 것이다.
‘작년에도 떨어졌는데, 올해 또 이 무슨 날벼락인가?’ 최버럭은 분에 못 견뎌, A시의 담당 과장을 찾아가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에~~ 내 돈 내가 내서 미술관을 짓겠다는데 무슨 타당성 평가를 한다고, 어? 게다가, ‘부적정’ 평가가 웬 말이냐고, 어? 그게 타당하냐고, 엉?”




A시에 전입한 학예사 나우울은 심난하다
여섯 달 전, 수도권의 한 사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던 나우울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겠다는 단순한 목표로 A시의 학예사 공채를 통과해 꿈에 그리던 이직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라 주말마다 가족과 만나는 게 쉽지 않지만, ‘오너 노친네’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여러 차례 당했던 나우울은 오너의 갑질을 벗어날 수 있는 공립 기관에서 일하게 된 만큼, 복잡하고도 과중한 행정 업무 그리고 수시로 감내해야 할 야근에도 불구하고 자긍심 하나로 버텨나갔다.

‘A시립미술관 건립 추진팀’에서 열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나우울에게 늘 신경 쓰이는 대목은 올해 문체부의 ‘공립박물관 및 미술관 설립 타당성 사전 평가’를 훌륭히 통과해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 A시가 3차에 이르는 사전 평가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부적정’이라는 최종 평가 내용은 ‘미술관 수장고 부족, 기획전시실 프로그램 미비, 비전문가 관장의 문제, 소장품 확보 계획 수립, 미술사적 검증이 필요한 생존 작가의 개인미술관 지양’ 등이었다. 실무 담당자인 학예사 나우울은 올해 사전 평가에서는 기필코 통과하리라는 각오로 열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해당 사업의 평가 위원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 한 미술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세 차례에 이르는 자문을 거쳤고, 작년의 ‘부적정’ 평가에서 지적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전력을 다했다.

아뿔싸! 그런데, 어제 최종적으로 A시가 받은 결과는 ‘부적정’이다. 지난번에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일들을 모두 준비했지만, ‘생존 작가의 개인미술관 성격’이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시립미술관 명칭에서 작가의 이름을 빼고 작가 이름의 전시관을 따로 만들어 종합적 전시를 위한 기획 전시실을 보강했음에도 결과는 미역국이었다. 해당 원로 작가가 미술관 부지와 소장품을 기부한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혈세로 생존 작가(그것도 현대미술사에서 특별히 검증되지 않은)를 기리는 미술관을 건립하고 지속해서 운영하는 것이“타당하지 않다”는 평가로 이해되었다. 이해는 할 만하다. 그래도 그는 이러한 체념과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우울하고 괴롭다.

“지자체의 자율적인 문화 정책 의지를 문화체육관광부가 너무 까칠하게 간섭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랑 상황이 거의 비슷한 B시는 이번에 ‘조건부 적정’을 평가받았다던데, 이러한‘타당성 사전 평가’의 과정이나 결과가 과연 타당한가? 에이~‘적정’ 평가를 받기 위해 난 또 내년 한 해를 이 일에 매달려야만 하나? 재수 없는 영감탱이 최버럭을 또 계속 봐야 하나? 쩝!” 

*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 김성호(1966- ) 파리1대학 미학 전공 미학예술학 박사, 유니스트 박사후연구원,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 2015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2021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역임. 현 APAP7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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