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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야나기 무네요시의 민화를 보는 시선을 넘어서기

박영택

요즘 민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현재 민화작가라는 이들의 그림 대부분은 기존 민화를 그대로 그리거나 짜깁기한 후 공들여 색을 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민화를 보는 시선이나 수집에서도 모종의 편협함이 있다. 화려하고 정교한 궁중민화만이 또는 어눌하고 해학적인 민화만이 뛰어난 민화로 분류되는 것도 같다. 그런 양분된 시각이 아니라 회화 자체로서의 질과 독특한 그림 자체의 매력을 알아보는 깊은 안목과 이해가 요구된다. 조선민화를 회화 작품 자체로 대하면서 그것이 지닌 조형적 가치와 미적 특질에 대해 주관적인 안목을 처음으로 주창한 이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란 일본인이다.

1916년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한 이후 수차례 다녀가면서 한국미술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표명한 그는 그 결실을 1922년, 『조선과 그 예술』 이란 책으로 남겼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어느덧 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담론이 지닌 설득력이나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는 실생활에서 사용되던 물건들을 공예품으로, 또는 순수미술작품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것들의 자리를 생활 공간에서 전시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산신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102.7×70.8cm
ⓒ 도쿄 일본민예관


이러한 야나기의 태도와 인식은 전적으로 근대에 서구에서 태동 된 미술이란 개념과 전시공간, 미술관이란 제도 등의 수용과 그 영향 속에서 파생된 것이다. 동시에 야나기는 서구식 근대화에 의문을 품고 일본 고유의 대안적 접근을 모색하는 담론을 추구하였는데 이른바 ‘근대의 초극’이란 차원이다. 그래서 그는 근대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전근대적인 물건들에 대한 관심과 비평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이를 통해 서구의 대안으로 일본식 근대화를 모색했으며 그 한 예가 바로 일본 민중예술, 전통공예에 대한 주목이었다. 그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야나기는 조선의 민중예술, 전통공예품을 수집, 비평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민화 (궁중민화가 아닌)가 그의 눈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한다. 조선 민중의 일상적 공예품을 미학적 차원에서 논의한 야나기의 민예론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은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은 것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무심하고 소박한 형태가 주는 미감으로 서양의 근대 미학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야나기는 완성도 높고 고급스러운 것이 결코 아닌 것에서 놀라운 미감과 조형미의 극치를 찾아내는 자신의 안목을 드러냈다. 그것을 만든 장인들은 결코 그것을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추를 떠난 자리에서 가능한 미’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조선 민중들이 만든, 아무렇게나 만들어놓은, 분별심을 지우고 만든(그렇게 만들었다고 믿는 것들) 것 중에서 지극히 뛰어난 것만을 섬세하게 선별해서 수집하고 이를 자연미, 고졸미, 무명의 미 등의 수사를 붙이며 논의하고 있다. 미추를 떠날 것을 주장한 그이지만 실상 그는 다시 자연스럽고 무심하고 불가사의한 조형의 미를 두르고 있는, 있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취향과 미적 판단에 전적으로 기대어 그것들을 완상하면서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은 결과가 바로 그것을 추구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수집하고 논의한 조선민화 역시 이중의 딜레마를 겪는다.

취향이나 기호는 특정한 맥락 안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제도 안에서 강제되기도 한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취향과 기호를 학습 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은 나의 취향과 기호, 그림의 질에 대한 판단의 기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이다. 동시에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재구성하고 탈맥락화 하는 한편 기원의 순수성을 비판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야나기의 취미에 부합한 민화관에 맹신을 갖게 된다. 그의 관점에 부합해 무작위, 무기교, 자연미 등의 수사에만 의지해 민화를 보게 되거나 그의 안목이 절대적인 감상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되고 그것이 강제될 수 있는 모종의 위험이 자리하고 있다. 야나기의 안목에 의해 선별된 민화와 유사하게 보이는 민화들이 다소 애매한 기준 속에서 수집되고 모방되면서 그런 것들만이 조선민화의 유일무이한 특징이나 전형적인 성격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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