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9)종이를 아껴 쓰자

이선영

지원받은 또는 지원받을 공공기금을 정산해야 하는 연말에 미술계도 엄청나게 많은 종이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종이 재료가 되는 나무는 과도한 탄소배출 등이 야기한 기후변화, 그리고 그것이 몰고 올 위기에 대한 완충재로 필수적인데 그 또한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화되었다고 종이 소비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환경 관련 통계(ebb magazine, 2022년 11월)에 의하면, 천연펄프로 종이 1톤을 만드는데 2,541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또한 한국의 국민 1인 연평균 종이 사용량은 191.4kg으로, 전 세계 평균값 57kg에 비교해서 상당히 많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면 수단에 불과한 것들은 페이퍼리스(paperless)쪽으로 가야 한다. 작품 제작이나 집필 못지않게 골머리 썩혀 제출된 서류 뭉치들은 담당자들이 흘낏 확인해 보고 사무실에 쟁여 있다가 일정시간이 되면 폐기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전자문서나 메일, 전화 등으로도 가능했던 일이 서류 앞뒤로 본인의 도장을 찍어야 하는 요구가 많아졌다. 갑/을이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할 계약서 때문에, 종이 사용뿐 아니라 우체국에 가거나 직접 사람을 만나 전달하는 등의 번거로움도 커졌다. 장황한 형식의 요구는 계약서에 적힌 돈의 액수와도 상관없다. 물론 공적 영역에서 모든 게 투명하게 진행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보다 두툼해진 종이 서류들은 나중에 혹시라도 법적 문제가 불거질 때 필요할지 모른다. 



팔복예술공장에서 있었던 생태계를 이슈로 한 전시(전시감독: 김성호)


법적 주체로서 미술계 생산자들이 보장받을 법적 권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류 처리 과정이 더 엄격해졌다고 해서, 생산자들의 여건이 더 좋아졌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 소정의 원고료로 진행된 원고가 다른 지면에 재수록되면서 추가금을 받은 건 하나가 유일했다. 서류 작성의 엄격함을 통해 더 이익을 얻는 측은 생산자보다는 관리자들이다. 갑이 해야 할 일까지 을이 다 맡아 처리하면서, 갑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책임소재로부터 더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작년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내가 먼저 원하지도 않은 원고 집필에 최종 학력 졸업장까지 인증자료로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담당자들은 ‘이번만...’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앞으로도 재발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은 왜 자기네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일까. 왜 해당 작가가 원했던 필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쯩’이 있는 사람만 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만약 ‘쯩’도 없는 사람이 평문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놀라운 일 아닌가. 왜 문턱을 만드는 것인가. 온라인 자료 제출에서도 갑/을의 관계는 여전하다. 작년에도 공적 기관 몇 군데서 성희롱 예방 교육 이수증을 요구받았다.



필자의 성희롱 예방 교육 이수증


유치한 콘텐츠로 실소를 자아내는 공인된‘쯩’이다. 한 사람의 성적 성향이나 이력의 ‘객관성’을 확인하려면 차라리 그가 생산한 관련 텍스트나 작품을 첨부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은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익명적 관계 속에서,‘제가 올해 페미니즘 관련 글만 해도 여러 편 썼다’고 말 못한다. 공적 임무 수행에 필요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이수한 자로서 덧붙이자면, 그런 계몽적 교육을 강제로 받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부적절한’ 성적 행태가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나 같은 반항자들이 많았는지, 어디서는 이수증을 제출하지 않은 위원들을 앉혀놓고 예전의 대한 뉴스같이 성희롱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틀어주기도 했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 기관의 성과 확인이 아니라면 시간 낭비다. 모든 것을 맞춤형으로 해서 딱 제출하길 원하는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을들이 제출한 자료를 호치키스로 박는 일? 원고 마무리에 바쁜 연말에 ‘원 플러스 원’으로 사무 아닌 사무에 시간을 많이 뺏기고 나니, 문화계 현장에 대한 관심은 접어두고 책상머리에서 사무만 보는 이들의 애환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서류들 작성하기 싫어서 공적 영역에 어떤 지원서도 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에 작가나 기획자가 걸쳐있거나 할 때는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지침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새해에는 형식적 관료주의로 인해 누군가는 더 피곤해지고 지구 어딘가는 더 파헤쳐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