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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인공지능, 신뢰 그리고 큐레이팅

목홍균

2018년 가을, 기술 발전에 따라 큐레이터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 발표는 어떤 스캔들에서 시작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것은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총감독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배우자, 애인을 전시에 초대한 것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었다. 실은 논란 그 자체보다 그것이 왜 논란거리가 되었는지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 왜 이제 와서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동료 큐레이터 니콜라이 알루틴(Nikolay ALUTIN)으로부터 큐라트론(curatroneq.com)에 대해 듣게 되었다. 기계학습을 통해 작가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큐레이터들은 이제 우리는 모두 실업자가 되겠다면서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서 느껴지는 오만함 같은 것이 싫었다. 어쩌면 그런 오기를 동력 삼아 애써 전시를 기획했었는지도 모른다.




‘사적인 노래’(2020.7.22-8.19) 전시 전경 ⓒ두산갤러리


전시를 1년 정도 앞두고, 두 달 반 정도 작가와 큐레이터 공모가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되었다. 공모 지원이 끝나면, 지원자는 이메일로 전달받은 링크를 통해 다른 지원자들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평가가 시작된다. 이들은 1개에서 5개까지의 별점을 줄 수 있는데 이 행위가 프로그램의 학습재료가 된다. 총 373명의 작가가, 70여 명의 큐레이터가 지원했다. 한국, 미국, 독일,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캐나다 순으로 단연 한국 지원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종 선정된 작가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아일랜드, 러시아 출신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프로그램을 개발한 카메론 맥레오드(Cameron MACLEOD)는 간단한 통계자료 외 프로그램이 내린 결정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선정되었는지 개발자인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알고리즘 투명화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있다. 서비스 이용자는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으며, 제공자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이다. 지금 그것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지원한 사람 그 누구도 선정 과정 및 그 결과에 관해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번거로운 일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다음 공모를 준비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이기도 하고 그런 요구를 한다 한들 명쾌한 답변을 받을 수 있을지, 공연히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리라.

사실, 결과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고,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어떤 조작이 일어나도 그것이 조작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카메론 맥레오드를 신뢰한다. 공정한 무언가를 위해 고민하고 기어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른 그의 노력에 대한 존경과 그것에 대한 신뢰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어느 강의에서 판단기준 적용의 보편성 원칙이라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그것이 지향성과 의식, 자유의지를 가졌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그것을 가졌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신뢰를 추가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그가 내린 결정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기준이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더 엄격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공지능의 결정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그것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좀 더 엄격하게 말이다.



- 목홍균(1973- )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 ‘2021-2022 한국-네덜란드 교류협력프로그램’ 아르코 총괄기획자. ‘Septet’(드아펠 암스테르담, 2023), ‘Privated Song I’(두산갤러리, 2020), ‘The City of Homeless’(아르코미술관, 2016) 전시와 큐레토리얼 리서치 프로젝트 ‘Project The Great Museum’(국제교류진흥원, 2021) 기획. 드아펠 암스테르담, 도쿄아트앤스페이스, 런던 V&A의 연구자 및 펠로우쉽 과정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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