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1)그림/화집을 본다는 것

박영택

“『하河』, 『낙洛』, 『괘卦』, 『범範』모두 그림이다. 서책은 혼자서 연구해갈 수 있지만, 그림책은 반드시 토론이 필요하다. 옛사람들이 왼쪽에 그림, 오른쪽에 책을 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책은 많지만 그림은 없어졌다. 그래서 배움은 있으나 물음이 없고, 서책은 말을 다 표현할 수 없으며,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하니 오직 그림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진계유가 지은 『안득장자언』의 <도서>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은 문자로, 그림은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책은 읽는 것이고 그림은 보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보고 그림을 보면서 읽기도 한다. 이 둘이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는 상호보조적이기도 하다. 하여간 나는 진계유의 저 책을 옆에 두고 틈나는 대로 읽는데 말 그대로 주옥같은 글이 넘친다. <도서> 편의 글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당시의 의미와 지금은 사뭇 달라졌지만, 여전히 저 글이 지닌 무게가 있다. 오늘날 작가들은 그림/화집을 잘 안본다. 좋은 그림을 깊이 있게 보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고 조형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물론 수많은 전시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온갖 화집을 사지만 그것은 목적에 맞는 차원에서, 그러니까 오직 정보의 차원에서 수집되고 저장되고 활용되기를 기다리는 선에서 쓰인다. 자기의 그림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혹은 부분적으로 이용할 목적에 의해서 말이다. 심하게 말해 베끼거나 교묘하게 차용해서 제 것인 양 응용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이는 모든 책의 운명이다. 화집 역시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좋은 그림을 통해 뜻을 얻고 깨달음을 구하고 조형의 법칙이나 아름다움이나 미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일러 받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일일 텐데 그보다는 조급하고 단선적인 사고에 쫓겨 본을 뜨거나 방법론과 효과를 차용하는 선에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화집/그림을 보는 일인지 궁금하다.



뤽 튀망, 인테리어3, Oil on Canvas, 235.1×233.4cm


그래서인지 특히 동시대 젊은 화가의 그림의 상당수는 현재 생존하는 서구화가의 그림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 화집을 그대로 모방해 그린 결과이다. 외형은 그럴듯하고 효과적인지 모르겠지만, 미술의 개념과 그런 그림을 밀고 나오는 모종의 방법론의 필연성을 망실한 그림의 차이는 결코 가릴 수 없다. 무수한 뤽 튀망(Luc TUYMANS, 1958- )이나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1938- ) 또는 누구누구 작품을 너무나 강하게 연상시키는 작업은 마치 그들 화집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하다. 이는 조선 민화나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경우와도 일치한다. 열심히 화집을 본 결과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본래 그림을 보는 본질적인 이유와 배리(背理) 되는 면이 있다.

물론 이는 단지 지금의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한국 근현대미술 역시 화집을 통해 서구미술을 수용했고 조악한 인쇄를 통해 이미지만을 간직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 다시 서구 작가의 화집을 힐끗거리면서, 슬그머니 그와 유사한 그림을 양산하면서 이어진다. 여기서 빠진 부분은 서구작가의 그림이 그렇게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이나 해당 작가의 방법론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그런 역사와 개념, 조형에 대한 안목 없이 외형만을 차용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아무 이유 없는 것을 이유 있는 것처럼 갖다 놓는 꼴이다. 아니면 자신이 마치 그 작가가 된듯한 빙의에 사로잡힌듯한 체험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선인이 그림과 책을 함께 놓고 숙독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선비는 홀로 한 방에만 거처하며 왼쪽에는 그림, 오른쪽에는 역사책을 놓고서 먼지가 온 자리에 가득해도 개의치 않았다고 전한다. 그런 자리에 있는 그림은 단지 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로소 그림을 그렇게 여길 때 단지 흉내만 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