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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비합리적인 구조 안에서 표류하는 젊은 작가들

이대범

또 한 학기가 끝이 났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재충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이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4학년에게 이 여름방학은 결코 편하지 않은 시간이다. ‘졸업 전시’를 위해 고뇌하며 지난한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졸업 이후에 다가올 불투명한 시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어떻게 전시를 할 것이며, 어떻게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을지, 어떤 작업을 지속할 것이며, 작업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의 의문이 불연속적으로 뇌리를 스칠 것이다. 사실 ‘졸업 전시’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과정이다. 미래의 시간과 관련된 여러 상념을 해결해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졸업 작품에 매진하면서도 매년 이 시간이 되면 다수의 학생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리고 낙관적인 희망을 기대하며 묻는다.

“어찌해야 합니까?” 

절박한 심정이야 이해를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 해답을 모른다. 

그저 상투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답변만을 그들에게 할 뿐이다. 

“열심히 작업하세요.”


2005년 미술시장의 팽창과 문성식 작가의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300여 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참여했던 ‘서울청년미술제-포트폴리오’(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5명의 큐레이터와 10명의 작가가 워크숍과 전시 형태로 참여하여 작가 ‘되기’를 고민했던 인사미술공간의 ‘신진작가 수첩-열’, 대안공간은 물론이고 갤러리의 신진작가 공모전, 그리고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중앙미술대전’, 미술 전문지 『아트인컬쳐』에서 주관하는 ‘동방의 요괴들’,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아시아프’ 등 한 때는 ‘젊은 작가’ 열풍이 미술계를 강타하면서 여기저기에서 그들을 호출했었다. 대안공간은 물론이고, 미술관 그리고 심지어 갤러리까지 그들을 원했다. 당시에는 ‘젊은’이라는 어휘 하나 그 자체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주요 대학의 졸업 전시장에는 미술계를 휘감던 ‘젊음’을 선점하려는 다양한 눈이 머물렀다. 당시에는 졸업 후 전망이 장밋빛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희망을 가질 여력은 있었다. 물론 다수의 사람이 작가의 ‘미래’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을 무분별하게 소비했기에 당시를 무조건적으로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술 관련 게시판에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현혹하는 광고성 게시물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 전시가 어떠냐고 묻는다. 대부분 이러한 전시는 참가비·출품료 명목으로 10-20만 원 정도를 요구한다. 대부분의 경우 전시 목적 자체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 혹은 ‘권위’ 등을 앞세우면서 너무 거대하게 포장한다.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공간 지원, 리플릿 지원, 엽서 지원, 홍보 지원 등의 문구도 빠짐없이 게재한다. 그러나 이 역시 허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졸업 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이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품료를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러한 게시물에 관심을 갖는다. 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선은 아닐지라도 이렇게라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시의 목적도, 그렇다고 뚜렷한 심사 절차도 포함하지 않는 이러한 전시는 결국 이 전시의 목적이 ‘돈’에 있음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갤러리의 얄팍한 속임수이다. 지금은 경력 사항에 한 줄이라도 게재할 사항이 생겨서 뿌듯할 지 모르지만, 이러한 경력은 쉽게 지워진다. 지우기로 결심한 순간이 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어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매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라는 상투적인 답변을 해왔다. 사실 이 말이 진심이다. 그렇지만 이 말이 그들에게 아무런 자극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파트타임스위트’는 대학 졸업 후 스스로 전시 기회를 마련하고자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비합리적 사회 구조 안에서 표류하는 동시대 젊은이의 삶의 방식을 차용’하여 전시장이 아닌 소외된 공간을 찾아 작업을 진행한다. 1990년대 한국미술을 열었던 ‘뮤지엄’이 스스로 뮤지엄이라 칭하며 동시대 삶의 언어를 표출했듯이 이들도 지금 자신의 언어를 무기로 ‘작가되기’를 진행 중이다. 어쩌면 막막한 실정에서 이들의 행동 양상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들 조급해하지 말고 힘든 여름 보내길.



이대범(1974-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아르코미술관 독립신진 큐레이터 공모

(2006) 선정,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2006)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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