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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자동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예술은?

이선영

사막을 방불케 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여름, 버튼 하나로 귀찮은 일들이 척척 해결되는 상상을 해본다. 생산력의 발전을 추동하는 기본 동력인 자본과 노동에서, 기계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러한 공상은 상당 부분 현실화하는 중이다.

기계의 특성은 자동성이다. 조직 사회 또한 자동적이고, 그래서 ‘객관적이며 생산적’으로 작동될 것이 기대된다. 자동성은 파국적인 순간에야 그 본질이 드러난다. 얼마 전 파행을 거듭했던 국제 행사가 그 예다. 158개국에서 4만 3천명이 참가한 역대급 규모의 잼버리 대회는 결국 중도 해산됐다. 각국 청소년들이 새만금 벌판에서 야영하면서 문화를 교류한다는 훌륭한 취지였지만, 행사를 핑계로 관련 공무원들이 지난 8년간 99번의 해외 출장이 있었다는 보도는, 1,000억 원 이상의 엄청난 예산을 쓰고도 망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이 문화행사에 배정된 예산 1,170억 원 중 집행부 운영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74%였다(연합뉴스, 8월 9일).

현지의 악조건을 대체한다는 프로그램도 ‘K-컬쳐’를 알린다는 명목의 관광 중심이어서, 정작 세계스카우트연맹에서는 잼버리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막대한 세금으로 때우는 졸부적 해결책이 연이어 제시되고 실행되면서 파행의 파장은 한 행사를 넘어서 우리 사회 곳곳으로 도미노처럼 퍼졌다.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Land Of Cockayne, 1567
일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열리는 먹거리가 있는 지상낙원에 대한 오래되고도 보편적인 상상.


원래의 계획이 있었을 기관들이 권력의 입김에 임시방편적으로 동원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대기업들은 국가 정책의 허술한 곳을 채움과 동시에, 지원을 매개로 한 글로벌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선진국이 되자마자 급격하게 후진국화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여러 문화정책의 난맥상에 관료주의적 관성과 그것이 낳은 병폐가 있다. 아직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여러 국공립 미술관의 관장직이 공석이고, 최근 채워진 몇몇 자리도 미술인이 아닌 공무원(‘한국미술의 과제(183)’, 본지, 2023년 3월)인 곳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국가는 ‘국장급’에 불과한 공직을 하찮게 여기는 게 확실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몇 년 전에도 오랜 기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 바 있다. 누가 돼도 상관없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인 것 같다. 많은 인재(人災)급 재난이 있을 때 ‘내가 그 자리에 갔던 들 무슨 변화가 있었겠나’라는 취지의 변명을 늘어놓는 고위 공무원 또는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의무에 무능함을 자인하는 셈이다. 어느 시점부터 현대사회는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누가 조타수가 되든 상관없는 사회가 된 것인가. 어떤 사안도 자동으로 좌/우로 나눠지는 과도하게 정치화된 사회에서 변화는 무력화된다. 이항 대립은 현행의 구조적 질서를 공고하게 유지한다. 세계를 시계와도 같은 정교한 기계장치로 본 고전과학의 사상이 비유를 넘어 현실로 다가온 계기는 정보혁명이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챗GPT 등으로 가시화된, AI 혁명도 세계 4위권이라는 평가(‘시사기획 창’, KBS 1TV, 8월 1일)가 있다. 보편화된 자동 항법 장치는 이미 우리의 일상적 좌표를 자동으로 찍어주고 있다. 미술계 또한 이미 깔린 판에 속하기 위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코로나가 더 급격하게 앞당긴 비대면 사회에서 기계적 자동성은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파고든다. 브루스 매즐리시는 『네번째 불연속,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에서 ‘자동(auto)’이란 말의 고대 어원에 ‘동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불어로 ‘나 자신’이라고 말할 때의 의미라고 한다. 자동화된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나’들의 악다구니 같은 경쟁이며, 개인에게는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조직에 대한 강한 선호가 생겨난다. 개인만으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는 시대다 보니, 조직을 앞세우는 것이다. ‘보편적 질서’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쟁취해야 한다고 말해진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동성은 객관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기계적 자동성은 이성의 승리이기보다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말한다. 자연의 순리는 없고 강자의 논리만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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