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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조각의 미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박천남

작업실에서 신작을 제작하는 작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유토 등으로 소품은 만들어도 중대형 작업을 하는 작가를 접하기는 더 어렵다. 작가로서도 전시 계획도 없고 보관할 공간이나 제작 여건이 복잡한 현실에서 막연하게 대형 작업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초가 되는 미술대학 내 조소과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어느 교원은 요즘 학부생은 더이상 흙을 빚거나, 돌을 깨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기실보다 카페에서, 드로잉북보다 카메라를 매고 다니며, 다양한 소재로 소품을 먼저 만들거나, 드로잉의 느낌이 좋으면 공장이나 석조공방에 이런 크기로 바꿔서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아저씨 화강암으로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얼마에요?’ 혹자는 석공과 조각가의 차이를 말한다. 예술은 인간정신의 산물이니 손의 산물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수사를 열거하며 대학이라는 아카데미 울타리 안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았으니 우리는 예술가고, 저들은 그렇지 않기에 돌을 다루는 기술자로 분리한다. 우리는 돌에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부연을 덧붙이며. 아무리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화 되고 서로 맞지 않은 단과대학을 통합하더라도 기본이 흔들려선 안 된다. 전공에 부합하는, 과명에 부합하는 커리큘럼이나 배움의 틀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어느 대학 조각과에서는 석조 과정이 삭제되고 수업도 폐강 되어 사라졌다고 들었다. 목조, 철조, 용접 등 학과의 핵심 배움 형식이 거세된 것이다. 석조의 기초를 배우지 않으니 돌의 성질이나 겉돌 작업도 모르고 줄눈을 건드려서 낭패를 경험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주물, 주조 작업 과정의 경우를 보라. 더이상 학교에서 과정을 경험하거나 이해할 기회가 없다. 규모나 설비가 상당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로 변두리 몇몇 공장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공방문화가 자리한 판화는 나은 편이다. 주물 주조과정 학위논문이 나올 정도다.



2017 ⓒ PxHere.com


학부 과정에서 기초적인 실천 과정이 사라져야 하는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학과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전공이 통폐합된 것도 아닌 조각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가? 과정을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인가? 학부 예체능 교육에서 이론과 실천의 현실적 비중 안배가 필요한 것이지 한쪽을 없애는 일은 폭력적이고 학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 아닌가? 무엇이 이를 불필요한 일이 되도록 만든 것일까? 대학원 박사과정도 아니고 학부에서 기초실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신의 근력과 체질이 약화될 수밖에 없음이다. 평생을 기본적인 작법에 충실하자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학부에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할 때 조각의 현재와 미래가 균형 있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실기를 없앤 입시과정 보다 심각한 결손이다. 의대생이, 공대생이 실습과 실험을 생략하고 이론 중심으로 해부하거나 연구를 대체한다면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입으로 지시하고 누군가가 수술을 대신하는 것인가? ‘AI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비하는 거시적·미래적 전략인가? 사물성과 물질성을 몸과 맘으로 겪어야 할 시기에 머리만 무거워질 것인가? 환갑을 코앞에 둔 한 석조 작가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조각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다. 한국에는 더이상 석조를 심화해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교실 밖에서 배워야 하는가? 공방에서 재료 다루는 노하우를 배워야 하는가? 바야흐로 미대생도 초중고생이 보습학원 다니듯이 실기학원을 다니며 알아서 배워야 하는가? 실제로 실기시험 없이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어느 대학은 1학년 때 데생을 포함한 기초 교육을 받는 현실이다.

조각, 어떻게 되려는 것인가? 가뜩이나 상대적으로 위축된 현실에서 교육현장에서 현실이 이러하다면 한국조각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눈은 높아지고, 손은 경험을 못 따라가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맡기면 되니까.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옛말을 생각해보라. 달걀 프라이 맛을 보려면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보아야 한다던 어느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과연 돈과 시장만 든든하면 한국현대조각이 살아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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