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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복합문화공간으로 영역 확장

김진엽

얼마 전에 아는 분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개인회사를 운영하다가 퇴직한 분인데 사업을 하던 중 잔금 대신 받은 그림들이 있는데 한 번 봐달라는 것이었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역시 그다지 가치 있는 그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림은 둘째 치고 보존 상태들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림 이야기 대신 그림 관리 등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은 자신이 그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림에 관계되는 일을 꼭 하고 싶다고 강조하였다. 필자는 웃으면서 직업이 되면 그만큼의 즐거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을 돌렸다. 그리고는 몇 마디 더 나누다가 다음에 약속을 잡기로 하고 고급빌라의 문을 나섰다.


가끔 미술 외적인 일에 근무하는 분들을 만나면 미술관에 근무하는 것이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숫자와 실적에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예술계통이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략 1980년대부터 많은 화랑과 미술관들이 건립되기 시작하였고, 미술 관련학과가 설치된 곳이 70여 대학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08년을 기준으로 보면 국립 1관, 공립 24관, 사립 90관 등 총 115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최소 1도 1개소의 공립미술관과 2-3개소의 사립미술관이 현재 운영되고 있다.



미술계의 양적 확대에 따라 미술관련 업계 종사자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평론으로 등단한 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다양한 관련 업종과 인원들이 꽤 많이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미술이론 관련 대학원들과 유학생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고급인력도 많이 확보된 상태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술관련 업계의 열악한 운영 실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공립미술관들의 전문계약직은 사실상 임시직이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강의하나 구하기 힘든 것이 미술이론 종사자들의 현실이다. 또한 개인 화랑이나 미술관은 경영주의 의지에 따라 운영되므로 전문성보다는 ‘순종형’ 전문가들을 필요로 한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만났던 학생들이 가끔 찾아온다. 과연 비싼 등록금을 주고 대학원을 가야 하느냐, 유학을 갔다 와야 하느냐, 또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등 그들을 만나면 반가움보다는 답답함과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래서 미술계에도 새로운 활력소나 돌파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필자가 근무하는 재단은 공연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예술관련 단체이다. 공연장과 미술과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면서 문화사업, 지원사업 등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공·사립미술관보다는 훨씬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막대한 운영비가 투입된다. 그러한 형태의 문화공간을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구분한다.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예술의전당 등 주로 서울에서 시작된 복합문화공간은 성남, 고양 등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대개의 문화공간은 시나 도에서 직영하기보다는 재단 형태의 산하기관으로 운영된다. 아마 이러한 확산은 최근의 공연에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생긴 현상이며, 지역민들의 문화 욕구가 높아지면서 기존의 공무원의 조직보다는 다른 전문적인 조직의 필요성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공연장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미술관 근무 때보다 훨씬 역동적이며 다양하고 포괄적인 영역을 만난다는 것이다. 관람객의 확대를 위한 홍보와 마케팅, 세입 확대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 기획, 다양한 예술인들과의 만남을 통한 공연장의 질적 향상 등 기존의 미술관이나 화랑들에서 이루어지던 경영 방식과는 또 다른 운영체계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근무하는 인원들은 대개 공연 관련업종이나 예술경영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또 여기에는 지원 부서들인 총무, 경영, 시설 등 예술관련 연관성이 작은 부서도 있다. 미술관에 비해 복합문화 공간은 아직 초창기이므로 전문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외에도 도나 시 산하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 같은 많은 지원 재단들이 있는데 여기는 사업 운영보다는 사업지원 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그 동안 필자는 많은 공연장 재단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미술관련 전공자들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보면 그러한 기획 능력이나 관리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공연이나 문화 기획 역시 전시기획과 유사한 부분이 있고 또한 예술에 대한 시각들이 타 장르보다는 해박한 것이 미술 종사자들이다. 이제 조금 더 눈을 다른 분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예술의 탈 장르는 이미 대세이며, 관객과 호흡하는 다양한 전시기획들을 이제 새로운 영역에 적용시켜야 한다. 고민만 하지 말고 새로운 창을 열어보자.



김진엽(1963- ) 홍익대 미학 박사. 구상전 평론상(1993) 수상.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미술세계 편집국장,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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