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8)누가 미술관의 권위를 신뢰할 수 있을까?

박영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교체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도 새로 부임했다. 시차를 두고 여러 문화예술기관 관장이나 미술관 관장의 얼굴도 바뀌었다. 대체로 임기가 2-3년 남짓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인물로 이내 대체된다는 인상이다. 개인적인 소회지만 관장직에 오른 이들이 신선하거나 새롭다는 인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 드문 편이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만하다고 여겨지는 인정할만한 사람이 임명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뛰어난 능력과 깊이 있는 전문성을 지닌, 눈 밝은 이들은 아예 이 판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것도 같은데,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선별된다는 믿음이 없기에 응모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명예욕 강한, 기존 인물 몇몇이 마치 정해진 순번제로 관장직을 하는 인상이다. 전국에 있는 미술관 관장 자리를 숨 가삐 옮겨 다니며 이력서의 한 줄을 공들여 늘리고 있다.

오늘날은 관장직 자체가 아예 특정인의 직업이 된 것 같다. 축적된 경력과 경험으로 미술관 행정이나 운영을 매끄럽게, 무리 없이 해나간다는 장점이 있기에 선임되는 것 같다. 이 역시 상당히 중요하고 필요한 능력임을 부인할 순 없다.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짧은 관장의 임기는 미술관 전시와 업무를 다분히 행사 위주의 전시로 몰아가고 한시적인 기간 내에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강박에 쫓기게 한다. 동시에 임기 동안 자기 검열에도 시달리며 임기 연장에 목을 매는 비루한 존재로 자신을 묶어 놓거나 관계 공무원이나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장이 주도하는 현재 임기제 관장직 선정 기준은 뛰어난 안목과 깊이 있는 전문성, 해당 분야를 통찰하는 실력 보다 정치적인 성향이나 인맥, 연줄이 우선 작동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박정훈


모두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문체부 장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지자체미술관 관장의 상당수는 정치적인 입장과 무관할 수 없고 정권과의 코드가 먼저 작동한다고 생각된다. 나는 그런 면에서 진보 정권이나 보수 정권이나 똑같은 실수, 잘못을 저질러왔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 정치세력과 친분이 있다고 소문나는 특정인이 세평에 오르내리고 그러면 어김없이 그이가 임명되는 사례를 접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해져 가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인 민낯을 침묵과 체념 아래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나로서는 최소한 유럽·영미권에서 미술관 관장직이 정권 개입, 정치적 입김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임명된다고 들은 바가 없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그것은 철저하게 미술계 내부에서, 결코 부정하기 어려운 전문성과 특별한 능력의 인정이라는 공유성 아래 이루어지는 일이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장만이 아니라 지자체에 속한 미술관 관장직도 마찬가지다. 지방은 지자체장의 입김이 개입하면서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더욱 예민하게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며 ‘보신’을 해야 한다.

한국의 국공립미술관 관장직은 시장 중심으로 작동하는 현 미술계에서 작품 자체를 온전히 평가하고 이해시키면서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옹호하고, 이를 자본과 투기, 키치가 압도하는 미술판에서 지켜내며 그것이 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인식시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미술관 전시와 수장품은 그런 작품으로 빛을 내며 채워져야 하고, 그 기준이 엄격하고 높아야 한다. 옥석을 가리고 지지해주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미술관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관장 임용이 다반사인 우리 미술관들이 도대체 어떤 권위와 신뢰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