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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희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선영

작년 12월, 2030세계박람회의 부산 유치에 대한 뜨거운 기대는 결과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충격을 남겼다. 경쟁에서 패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 사안에 대해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백군 이겨라/청군 이겨라’하는 식의 맹목적 대응은 아니었나. 박람회는 미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당대 첨단을 자랑하는 문물이 총출동하는 문화의 장이라는 점에서 연결된다. 세계 곳곳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 전쟁에 빗대는 것이 죄스럽지만,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 ‘하나가 되는 우리’, ‘원팀’ 등, 관련 뉴스를 통해 들려온 비장한 멘트에 깔린 것은 전쟁에 임하는 태도였다. 1900년 4월 14일에 개막해 20세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파리 만국박람회처럼 당대 문화예술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예가 있다. 당시 최첨단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관광자원이자, ‘세계 문화유산’에 오른, 프랑스의 상징처럼 각인된 에펠탑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다.

박람회는 사회적 근대성인 모더니티와 예술적 근대인 모더니즘과 연결고리가 된다. 물질적 발전과 예술적 진보는 상호작용할 뿐, 양자가 하나는 아니다. 행사 유치에 관련된 ‘문화전쟁’은 끝나자 대차대조표가 남았다. 2023년 말 엑스포 유치 관련 예산을 최소 5,744억 이상을 쓰고 29표(165개국 가운데 17.6%)밖에 얻지 못한 객관적 현실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데, 정권의 취향에 길들여진 ‘국정홍보방송’으로 전락한 주요 언론은 없었던 일인 양 덮기에 바빴다. 엑스포 후보지 결정 발표 전날 9시 뉴스 방송 무대를 부산으로 옮길만큼, 마치 다 된 밥인 것 같은 축제적인 분위기로 붕 떠 있었기에, 말 없는 추락을 지켜보는 시청자는 황당할 수 밖에 없다. 일반 국민보다 국제 정세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국정원이나 외교부는 물론, 주요 방송사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만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좌) 1900년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전경
우) 로베르 들로네, 붉은 에펠탑, 1911 ⓒ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근본적 반성이 없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이러한 희망고문이 빈발할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괴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공적 자원이 너무 많이 투입된 이 헛발질에 비한다면, 예산문제에 관한 한 그보다 작은 문제일 수도 있는 예술 작업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국가 예산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 역시 국민의 혈세라는 귀한 공적 자원이기에 검증은 중요한문제다. 미술도 제도화되어 때가 되면 작가든 기획자든 많은 지원 서류를 작성한다. 그들이 그간 해왔던 성과물만큼이나 계획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대개 1-2년 단위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계획이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어야 기간 내에 현실화가 가능하다. 선정이 되어 예산을 받은 후 시작하는 계획은 실현되기 힘들다.

현재까지는 이렇다가 아니라, 막연하게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에 치중한 경향은 공모 영역뿐 아니라, 이제는 작가가 되는데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한 석·박사 논문, 소소하게는 평문을 대신하는 작가노트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평론 등 미술 관련 언론의 역할이 부족해서 의도와 결과의 괴리가 대부분 검증되지 못하고, 구체적 실행안 보다는 관념적인 수사로 가득한 계획서만이 전시나 행사의 결과물인 양 남아서 담론으로 순환하고 있다. 진짜 진행 중인 작업이나 기획은 연결되어야 하는 결정적 고리를 구체화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기에, 추상적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관념적인 담론은 부실한 계획이다. 이런 계획이 객관적인 자료랍시고 후대에는 중요한 기록으로 간주될 것이다. 예술은 이상의 영역이지만, 작금의 현실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전략, 경제적 이익 등 거품이 가득하기에, 이를 걷어내는 평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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