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10)돕하고 힙한, 시크하고 귀여운 작업?

박영택

프란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연구, 1980, Oil on canvas, 35.6×30.5cm


미술대를 졸업했건 독학으로 시작했건 작가가 되려는 젊은이의 상당수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인 어려움, 작업에 대한 미숙함, 안목과 경험의 부족함 등으로 유동적인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힘겹게 버틴 이후에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작가를 꿈꾼 이들 중 대부분은 탈락하고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이전에 비해 오늘날은 지원제도가 다양해졌기에 작업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나은 편이다. 물론 경쟁은 치열하지만… 최근 형성된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작품 판매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instagram.com)에 맞춰진 전시 내지 작가 소개로 지형이 바뀌고 여기서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 같다. 자신과 작품을 적극적인 상품으로 매끈하게 올려놓고 홍보하는데 대부분 일러스트나 만화, 팝에 유사한 취약한 그림들이다. 더구나 그림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역시도 동일하다.

오늘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우선 인류가 회화를 시작한 이래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지금에 이른 과정을 살피고 해석해서 그와는 다른 회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미술사에 대한 공부와 작가에 대한 분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술관에서, 화집에서 접한 뛰어난 작품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해체하고 이를 넘어서는 안목과 기법을 익히는 일이 더없이 필요하다. 고흐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바라보며 그의 친구에게, “이 그림만 계속 바라볼 수 있다면 오로지 딱딱한 빵과 물만으로도 버틸 수 있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네는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을 방문해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접한 후 모더니즘의 계기를 만드는 새로운 양식을 구현했다. 뉴욕 모마에 걸린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를 오래도록 찾아가 응시한 마크 로스코는 이후 특유의 색면추상을 그려냈다. 부랑자로 지내던 17세의 프란시스 베이컨은 피카소 전시를 보고 깨달아 이후 독학으로 그만의 고통스러운 형상을 그려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젊은 작가들에게 그림/미술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최근 읽은 젊은 작가의 인터뷰를 모은 책에서 이들의 작품 주제를 간추려 묶어 보니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다루는 작업, 인간 소외가 팽배한 사회에서 과연 인간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부조리의 키워드, 따뜻함과 편안함을 지닌 위로의 그림, 현실과 꿈에서 목격한 환각,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 자연의 순환과 정지된 찰나의 순간, 소외된 상처의 치유, 인간의 내면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 어떤 대상들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를 조합하고 재해석, 관객들이 아름다움을 느껴 같이 좋아하고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예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나 에너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 포괄적인 인간성을 담아내려는 것,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그림, 돕하고 힙한, 시크하고 귀여운 작업, 일상적인 감정,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꿈속의 공간을 표현, 개구리와 두꺼비 같은 작고 소중한 친구를 그림, 삶의 정의와 방향성을 표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에 대한 주제, 각자의 시선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 개인의 정체성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이미지로 표현…”
단 한 명도 미술의 역사에 대해, 미술적인 것에 대해, 미술에 대한 개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가 없었다. 자신의 제한된 일상의 고리 안에서 마냥 징징대거나 감당할 수 없는 거창한 주제를 그럴듯한 레토릭으로 포장한다. 그러니 좋은 그림이 나올 리 없고 비평가의 눈에 들어올 수 없고 결국 작품이 미술계에서 논의되기 어렵다. 표현 방법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그려온 낙서/만화 수준의 그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로서 오래도록 생존하고 싶다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제대로 배워야 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