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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사건 이전과 이후의 빌런

김성호

ⓒ 김성호, 2024


2024년 4월 1일 배트맨이 사는 고담시
나카노(Christopher Nakano) 현 고담(Gotham)시장이 곧 재선에 도전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자 시민들은 그의 퇴진 운동에 돌입할 태세이다. 물가 폭등으로 인한 시정 실패도 그렇고 최근 불거진 친인척 비리 사건과 연루된 권력 사유화와 무차별적인 문화 예술 탄압으로 인해 시민 불만이 폭주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퇴진 운동의 선봉에 나선 이들은 거리 미술가들이란다. 왜? 최근에 나카노 시장이 고담방송(GBC)에 나와서 최대 빈민 지역인 내로우스(Narrows) 출신 미술가들이 벌인 거리예술을 불법으로 선포하고 공권력 행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한인 교포 3세이자, 이 지역 출신 거리예술가 매버릭 킴(Maverick KIM)이 시장과 고담시의 유력자산가 웨인을 함께 싸잡아 부패한 권력으로 묘사하는 그라피티 운동을 몇 달 동안 벌여 왔던 것에 대한 응징 차원이다. 아이러니는 도처에 있다. 시장의 방송 출연 이후 졸지에 30대 초반의 킴과 동료 예술가들은 이 시대의 핍박받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윽고 일간지 고담가제트가 터뜨린 속보에서 시장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웨인(배트맨의 알터 에고)이 고담시경(GCPD)의 짐 고든 국장에게 서류 한 통을 남기고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경찰 투입에 대한 시장의 행정명령을 거부하고 나선 고든 국장이 이 서류 내용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시장 퇴진 기자회견을 곧 할 예정이란다. 두둥! 그런데 거기에는 고담시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활동했던 슈퍼빌런 라스 알 굴(Ra’s al Ghul)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2029년 5월 1일 킴이 사는 개성
그 후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거리예술가 킴은 최근 조부의 고향인 한국에 신청했던 정치적 망명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이제는 살만하다. 한국 국적도 취득했고, 한국말도 꽤 능숙해졌고, 결혼도 했고 예술 활동도 재개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이곳에서는 고담시에서처럼 무도하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우다가 핍박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마음 놓자. 
이곳 한국은 7공화국이 된 이래, 최근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조건으로 급물살을 탄 통일 논의로 인해 온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30년 1월 1일을 ‘통일 임시 정부’ 수립 예정일로 못 박아 두고 남북한뿐만 아니라 6자회담,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유엔과 같은 다자간 국제 협력으로 통일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전 세계가 그야말로 난리 통이다. 헌법, 선거, 재정, 안보, 방위의 재편성 및 인프라 개발 등 남북한의 공동 노력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킴은 남북한 주민의 거주지 이동이 자유로워진 작년 말부터, 통일 수도로 잠정 확정된 개성에 가족과 함께 임시 거주 중인데, 내년에 통일 임시 정부가 수립되면 ‘통일아트프로젝트’를 실행할 계획이다. 그가 저항 운동으로서의 그라피티를 그만둔 만큼,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거리예술을 지속하되 사회 비판적 예술보다 남북한 문화의 괴리를 극복하는 건강한 커뮤니티 아트를 실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통일한국미술협회, 통일예술협동체, 평화예술모임, 디엠지문화네트워크 등 정체불명의 다국적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유네스코의 긴급 지원을 받아 내년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중 덩치가 큰 한 단체가 북한의 핵을 노리는 글로벌 테러 집단과 결탁했다는 루머가 떠도는 중이다. 킴이 접한 첩보에 의하면 그 집단은 배트맨과 대결을 벌였던 파시즘 테러리스트인 슈퍼빌런, ‘라스 알 굴’로부터 통제받고 있단다. DMZ에서 걷어낸 철조망과 군 장비를 쌓아 올려 세계 최대 규모의 평화 기념 모뉴멘트를 만든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몰래 핵 테러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첩보를 입수한 유엔테러리즘방지위원회, 국제반테러리즘센터가 협력해서 비밀리에 사전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서라, 고담시에도,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평화의 도시 개성에도 빌런은 발톱을 숨긴 채 활동 중이다. 빌런이 어디 ‘라스 알 굴’뿐이랴? 전 세계를 무대로 예술 진흥과 인류애로 위장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글로벌 협잡꾼들도 빌런이다. 흐음!! 킴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카노 고담시장의 감옥행을 이끈 고든 경찰국장의 폭로 기자회견이 있던 2024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던 배트맨! 그가 조만간에 통일 수도 개성에도 나타나겠지? 

* 이 글은 팩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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